[글로벌 미디어 그룹을 가다]<4>佛 비방디

  • 입력 2009년 1월 30일 03시 01분


“콘텐츠 24시간 살아있게”… 융합으로 세계의 눈 사로잡다

자회사 유니버설 - 액티비전 등이 만든 콘텐츠

모바일 인터넷에 실어 실시간 소비자 곁으로

부사장 “인터넷 회사가 전통 미디어 될 순 없어”

《프랑스 경제일간지 ‘레제코’의 광고팀장 올리비에 토로(32) 씨. 그는 비방디 그룹의 이동통신회사 SFR에 가입해 휴대전화를 사용한다. 프랑스 2위의 이동통신회사 SFR는 지난해부터 모바일TV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는 요즘 지하철 안에서 3세대(3G)폰인 삼성 어딕트 휴대전화로 SFR가 무선으로 전송해주는 TV를 즐겨 본다. 특히 SFR를 이용하면 같은 비방디 그룹에 속한 유료 TV 채널 카날플뤼스(Canal+)의 방송프로그램을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인터넷TV(IPTV)가 생활화된 프랑스에서 최근 경쟁은 모바일TV로 옮겨가고 있다. IPTV나 모바일TV나 모두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TV 프로그램을 전송한다. 유선망에서 일어났던 디지털 혁명이 무선망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인 비방디는 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비방디 그룹은 방송기업 카날플뤼스부터 통신업체 SFR, 아프리카 모로코의 통신사 마로크 텔레콤까지 미디어 콘텐츠 기업과 통신 기업 융합의 모범 사례로 손꼽힌다. 비방디는 이에 그치지 않고 세계 최대의 음반기업 유니버설뮤직 그룹, 게임회사인 액티비전과 블리자드를 합병한 액티비전블리자드 등 5개 그룹을 소유하고 있다.

○ ‘디지털 컨버전스’를 향해

“전통적 의미의 텔레비전은 이제 시청자를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비방디가 고민하고 있는 양방향TV나 주문형 비디오, 모바일TV가 바로 그러한 대안이 될 것입니다.”

비방디의 제리 튀리니 수석부사장 겸 최고전략담당자(CSO)는 지난해 5월 ‘서울디지털포럼’ 미디어 정상회의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기존 텔레비전이 인터넷으로 진출할 수 있지만 인터넷회사들이 전통 미디어가 될 순 없을 것”이라며 TV 방송사업자가 인터넷 시대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며 주도권을 놓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콘텐츠가 킹(King), 콘텐츠를 소통시키는 커뮤니티가 퀸(Queen)이라면 수용자의 경험이야말로 제국(Empire)”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비방디 그룹은 핵심 분야인 텔레비전 영화 음악 게임 모바일 전화 등 다양한 사업 분야에 진출하며 미디어 시장에서 수익을 올려 왔다. 여기서 비방디가 추구해 온 사업 통합의 기본 방향은 한마디로 ‘디지털 컨버전스’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컨버전스 전략이란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유무선 통신, 인터넷, 위성과 텔레비전 등과 같이 여러 가지 플랫폼을 활용해 소비자가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콘텐츠와 네트워크 서비스의 결합을 의미한다.

디지털 컨버전스 전략의 기반은 통신사업 부문 기업인 SFR와 뇌프 세제텔(Neuf Cegetel)을 들 수 있다. SFR는 프랑스 제2의 통신사업자로 1930만 명의 이동통신 가입자와 380만 명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를 갖고 연간 120억 유로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통신사업 부문에서의 성공은 앞으로 콘텐츠의 주된 창구가 될 모바일과 인터넷 시장에서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줬다. 비방디는 콘텐츠와 배급 네트워크의 결합을 인터넷과 이동통신 네트워크를 통해 추진하고 있다. 토로 씨의 사례처럼 카날플뤼스나 유니버설뮤직의 콘텐츠를 SFR의 모바일과 초고속인터넷에 실어 VOD 등의 형태로 받아 보게 하는 것이다.

○ 황금시장으로 떠오른 게임산업을 잡다

음반사업의 온라인화를 주도했던 비방디는 최근 들어 게임사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7월 9일 비방디와 미국 비디오게임 제작업체 액티비전은 합병을 위한 협상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했다. 이를 통해 비방디 산하 게임 제작업체인 ‘비방디 게임스’의 자회사인 블리자드와 액티비전이 합쳐져 ‘액티비전블리자드’라는 새로운 합작 법인이 탄생했다. 2007년 기준 연간 매출액 3조7000억 원에 이르는 글로벌 게임산업체로 거듭난 것이다. 이는 한국 게임업체 엔씨소프트 매출의 10배 이상에 해당하는 수치다. 두 기업의 인수합병을 통해 콘솔 게임과 온라인 게임 간의 영역 파괴가 일어나자 게임 시장의 판도도 요동치고 있다.

비방디의 액티비전 인수는 글로벌 게임업계의 지형을 바꿀 만한 ‘빅딜’이었다. 지난해 3월 한국을 방문한 비방디 게임스의 전 최고경영자(CEO)이자 액티비전블리자드의 현 부회장인 브루스 핵은 “액티비전과 블리자드의 합병을 통해 전 세계, 모든 플랫폼의 게임 영역을 석권하는 최고 게임회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WoW 온라인’은 가입자만 10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온라인 게임 영역과 아시아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1979년 설립된 액티비전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3’, 닌텐도의 ‘위’, 마이크로소프트(MS)의 ‘X박스 360’ 등 콘솔 게임기용 타이틀을 생산해 온 게임 제작업체로 북미지역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게임사다. 최근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기타 히어로’와 스케이트보드 게임 ‘토니 호크’도 인기를 얻고 있다.

액티비전블리자드는 세계 최대 게임업체로 알려진 일렉트로닉아츠(EA)의 매출 규모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인수를 주도한 CEO 장베르나르 레비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게임사업이 비방디의 전통적인 수익원이었던 음악·미디어·통신사업을 대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며 “게임이야말로 비방디에 수익과 성장을 안겨줄 핵심 사업”이라고 말했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프랑스 첫 유료TV 설립

100여개국에 지사 법인

2000년 유니버설 합병

■ 미디어 그룹 비방디는

‘건설회사에서 종합미디어 그룹으로.’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비방디는 유럽과 미국을 주무대로 100여 개국에 지사와 현지법인을 가지고 있는 글로벌미디어 그룹이다.

비방디의 출발은 미디어 통신 그룹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방디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제네랄 데조(CGE)는 1853년 설립된 프랑스 건설회사. 리옹 지방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황제 칙령에 의해 설립된 CGE는 사기업보다는 공공기업에 가까웠다.

CGE가 미디어 통신과 같은 기존 사업과 전혀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였다. 1983년 프랑스 최초의 유료 TV 카날플뤼스 설립에 참여한 CGE는 1987년 통신업체 SFR를 설립하는 대신 건설 부문의 사업체를 매각하기 시작했다.

CGE는 1996년 통신 서비스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초석으로 세제텔(Cegetel)을 설립했고 1997년 스페인과 이탈리아, 1998년 폴란드와 스칸디나비아, 1999년에는 벨기에에까지 진출하며 유럽 지역의 대표적인 유료방송이 된다.

2000년부터 비방디는 캐나다 음료 및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그룹 시그램과의 인수합병을 통해 시그램이 갖고 있던 유니버설스튜디오와 유니버설뮤직 등을 합병하며 세계적인 미디어그룹으로 탄생한다. 합병 이전 물 공급과 건설의 비중이 전체 매출액의 49.3%를 차지했던 비방디 그룹은 합병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관련 사업이 총매출액의 46.3%가 되면서 기업의 성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비방디는 2003년 제너럴일렉트릭(GE)과의 협의를 거쳐 비방디엔터테인먼트와 미국 지상파 방송사인 NBC를 합병해 NBC유니버설을 설립하기도 했다. 비방디는 NBC유니버설 지분의 20%를 소유하고 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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