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13>빨간 머리 앤

  • 입력 2008년 7월 9일 03시 00분


◇빨간 머리 앤/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아름다운날

《“정말 아름다운 것을 볼 때 그런 아픔을 느끼지요. 그 길을 그냥 가로수 길로 부르면 안 돼요. 그건 똑같은 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니까요. 뭐라고 할까…. 그래, ‘가슴 벅찬 하얀 길’이 좋겠어요. 상상이 펼쳐지는 이름이지요? 저는 가끔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을 들을 때면 새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곤 해요.” 》

나홀로 여행길, 깜찍-유쾌한 동반자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책은 흔치 않다. 사람들이 이 수다쟁이 소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매혹당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기쁨, 놀라움, 감격, 슬픔, 설렘…천진난만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종알대는 모습은 우스꽝스럽지만 무척 사랑스럽다.

그 말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잔뜩 몰입해 넋을 놓고 있거나 사춘기 소녀처럼 눈물을 글썽이다 웃음을 터뜨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은 소설뿐 아니라 국내에서 1980년대 TV에서 방영된 만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낭만적인 소설은 양 볼에 주근깨가 가득한 빨간 머리 앤이 에이번리 마을의 초록지붕 집으로 입양 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곳에 사는 매슈와 마릴라 남매는 원래 밭일을 도와줄 사내아이를 원했다.

보육원에서 앤이 오게 된 건 착오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아이의 특별함을 금방 알아챈다. 앤은 평범한 일상을 의미 있게 만드는 마법 같은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앤의 명랑함은 무뚝뚝한 매슈나 엄격한 마릴라마저도 기분 좋게 감염시킨다.

앤의 가장 큰 매력은 풍부한 상상력이다. 가로수 길은 ‘가슴 벅찬 하얀 길’이라 부르고, 연못은 ‘반짝이는 호수’라고 부른다. 마릴라에게 자신을 (예쁜 이름이라는 이유로) ‘코델리아’라고 불러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하는 장면이나 케이크에 향신료 대신 진통제를 넣은 실수 때문에 ‘난 쓸모없는 아이’라며 자책하는 장면 등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 책을 추천한 여행작가 김연미 씨는 “혼자 하는 여행에선 큰 소리를 내며 웃을 일이 없다. 소리 나는 웃음은 사람과 있을 때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빨간 머리 앤을 읽고 있으면 웃음소리가 저절로 커진다”고 말한다.

앤이 에이번리 마을에서 성장하며 친구 다이애나를 사귀는 장면은 단짝과 우정을 맹세했던 모든 소녀의 귀감이 된다.

엄숙하게 서로의 ‘영원한 친구’가 되어 주기로 맹세하는 대목은 재미있으면서도 감동적이다.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며 숲, 호수, 들판에 이름을 붙이는 이들의 우정을 지켜보다 보면 마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즐거워진다.

자랄수록 멋있어지는 길버트의 고백과 앤의 설렘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낯선 여행지에서 사람들은 때때로 외로움을 느낀다. 차 시간을 기다릴 땐 마냥 따분하고 무료할 때도 많다.

하지만 창밖에 스치는 들판이나 눈부시게 푸른 하늘, 여행객들로 붐비는 명소에 빨간 머리 앤이 그랬듯 나만의 이름을 붙여 보는 건 어떨는지. 여행지의 모든 것이 동화 같은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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