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세상]상상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 입력 2008년 6월 10일 03시 00분


《하나같이 등 돌린 모습이다. 아미타불 약사여래불 관음보살…. 병풍 속 그림은 분명 절집에서 흔히 보는 불화인데 낯설게 다가온다. 친숙한 정면이 아니라 돌아앉은 불상이라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기 때문이다. 7월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몽인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이수경 씨의 ‘파라다이스 호르몬’전에 선보이는 6폭 병풍 ‘이동식 사원’. 고려불화의 뒷모습을 상상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무심코 간과한 것을 드러냄으로써 오랜 관습을 비틀고 확장된 시각을 제시한다.》

예수 부처 마호메트 등 다양한 이미지에서 각 부분을 따 와 재구성한 그의 ‘가장 멋진 조각상’도 비슷한 맥락이다. 절대 공존할 수 없다고 믿어온 것들이 도발적 상상력에 힘입어 조화로운 형상을 이룬다. 성스럽다고 여겨지는 관념에 대한 도전이자 상상 못한 방향으로 사유를 활짝 여는 시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회 제도 등이 우리에게 주입한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환기하고 신성불가침한 것들도 대화를 나누고 타협할 수 있는 대상으로 다가온다.”(김윤경 큐레이터)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갤러리에서 열리는 ‘I am a designer’전은 신성이 아닌 평범한 상식에 도전하는 경쾌한 상상을 선보인다. 예술작품과 상품디자인의 모호한 경계를 넘나들며 사유의 전환을 말한다. 램프로 변신하는 텅 빈 캔버스, 화분으로 바뀌는 양초, 버려진 나무토막으로 만든 의자 등을 통해 고정관념에 질문을 제기한다.

예술과의 만남은 창의적 예술가들과 대면하는 방법이다. 작품을 통해 그들은 익숙한 세계와 결별하라고 속삭인다. 지루하고 되풀이되는 일상에 숨 막힐 때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오랫동안 내 안에 주입된 타인의 취향과 획일화된 가치관에 의문을 던지고 한번쯤 세상을 거꾸로 서서 보라는 권유다.

경기 안산시의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리는 기획전 ‘이미지 반전(Negative images)’에는 늘 접하는 세상이 아닌, 그 이면에 초점을 맞춘 전복적 상상의 에너지가 가득하다. 김홍주 고상우 김동숙 씨 등 24명의 작가는 정형화된 틀에 저항하고 일상을 반전시키는 독특한 형식과 내용을 펼쳐 보인다. 빛과 그림자가 자리 바뀜 하는 사진필름이나 물건 포장을 위해 넣은 스티로폼에 각인된 형태와 같은 음(陰)의 세계는 존재와 부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네거티브 세계는 일상적 세계에 늘 이웃해 있는 세계다. 단지 주의 깊게 보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박우찬 학예연구사)

형체가 아니라 비움을 보여주는 조각(이원경)이나 글자를 해독 불가한 오브제로 대체한 텍스트(고산금)처럼 뒤집어진 세계를 현대미술로 형상화할 때 작가들의 기발한 상상력은 빛을 발한다. 물체의 안쪽을 파서 만든 ‘역발상’ 조각으로 보는 각도에 따라 환영(幻影)을 빚어낸 이용덕 씨, 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체험을 제안하는 황혜선 씨, 일상의 공간을 우주 공간으로 변화시킨 송민철 씨 등. ‘충격’ ‘역설’ ‘흔적’ ‘무의식’으로 구성된 전시는 ‘익숙함 속의 낯섦’이란 반전이 주는 시각적 자극을 넘어 현실에서 경험하기 힘든 세계로 지평을 넓혀간다.

“세상을 바꾸는 데 마법은 필요 없다. 우리 자신은 이미 이보다 나은 상상력이라는 능력을 갖고 있다”(조앤 롤링)는 잣대로 보면 예술이야말로 마법에 가장 근접한 것이 아닐까. 가령 한순간에 환한 기운을 퍼뜨리는 시인의 발랄한 상상이 그렇듯. ‘봄이 되면/땅바닥에 누워 있는 사닥다리를 세우겠네/은빛 사닥다리,/은빛 사닥다리를 타고/지붕 위에 오르겠네/…/구름이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대추나무가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종달새가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돌멩이가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땅바닥이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내 사랑이 아슬아슬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황인숙 시인의 ‘사닥다리’)

화가든 시인이든 예술가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듦으로써 세계를 재해석하고 변혁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굳어진 머리를 가진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상상해보라고 부추긴다. 그것이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인생을 제대로 향유하는 방법이라고.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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