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크리스마스 10선]<6>호두까기 인형

  • 입력 2007년 12월 1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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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요정 나라의 모습은 곱고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달콤한 기억 속에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모든 감각을 그 기억에 집중하기만 하면 마리는 모든 것을 한 번 더 볼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쇼핑과 발레극 호두까기 인형. 이즈음이면 사람들이 열광하는 품목입니다. 그 둘의 공통점은 아마도, 그게 크리스마스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와 사실은 별 상관이 없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저 오랜 관습으로 자리 잡은 소비 풍속이 돼 버린 듯합니다.

호두까기 인형 발레극은 그 시간 배경이 성탄 전야이고, 주인공 호두까기 인형이 그날의 선물이라는 것 외에는 크리스마스와의 관계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걸 제대로 알려면 완역판 ‘호두까기 인형’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들이 “예수님이 은혜로운 손길로 그 모습을 하나하나 어루만져 주고 있기에 크리스마스 선물이 그 어떤 선물보다 더없이 큰 기쁨을 가져다준다는 것도 잘 알았다”는 대목이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환상과 현실의 결합, 죽음과 부활, 희생과 구원, 굳건한 믿음, 찬란한 광휘 속의 영원한 삶에 대한 약속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원작 ‘호두까기 인형’은 발레극과는 좀 다른,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호두까기 인형의 유래가 이야기 속의 이야기로 들어가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요. 마법에 걸려 흉측하게 변한 공주를 한 무구한 젊은이가 구해 주고 대신 자신이 우스꽝스러운 호두까기 인형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리는 그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고, 인형들과 사악한 쥐들 사이의 한밤중 전투도 실제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마리 편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성적인 어른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놀이친구인 오빠는 믿었다 놀렸다 합니다. 심지어는 그 이야기를 들려준 대부조차 “어리석기 짝이 없는 허튼 소리”라며 일축합니다.

그러나 비웃음과 꾸지람에도 마리는 한결같은 믿음을 보내고, 그것은 결국 그녀의 믿음 혹은 환상을 현실로 이루어냅니다. 신비로운 마지팬 나라를 보여 준 호두까기 인형이 살아 있는 젊은이가 되어 나타나 마리에게 청혼을 하고, 그와 결혼한 “마리는 지금도 그 나라의 왕비”이거든요. “그런 것을 볼 줄 아는 눈만 있다면 온갖 멋지고 근사한 것들을 찾아볼 수 있는 나라” 말이에요. 크리스마스만이 아니라 온 생애를 통해 우리가 구하는 진실과 아름다움이 집약되어 있다는 것이 호두까기 인형의 매력일 것입니다.

독일의 대표적 낭만주의 작가인 호프만은 그 추상적인 진실과 아름다움을 메마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 감각을 일깨우는 묘사를 통해 생생하게 살려냅니다. 시각뿐 아니라 후각과 청각, 미각과 촉각까지 섬세하게 자극하는 대목들이 튀어나옵니다. 인형의 작은 한숨 소리에 감미롭게 울리는 장식장 유리문을 상상해 보세요. 몸의 감각이 정신의 자유와 만나 활짝 펼쳐지는 세계를 보여 주는 것이 호두까기 인형의 또 다른 매력입니다. 그것이 아마 이 문학 작품이 화려한 발레극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김서정 동화작가 동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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