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가위손

  • 입력 2007년 7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이토록 아름답고 슬픈 동화가 있을까요?

영화 ‘가위손’은 ‘배트맨’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을 연출한 팀 버튼 감독의 1990년 작입니다.

17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눈이 시릴 만큼 환상적인 비주얼에 감성적인 이야기가 정말 매력적이죠. ‘캐러비안의 해적’ 시리즈로 미국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자리 잡은 배우 조니 뎁의 초기 출세작이기도 합니다.

손이 가위로 된 사람이라니….

이 영화 속 주인공인 ‘가위손’ 에드워드는 물론 현실에선 존재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가위손 탓에 겪는 시련은 ‘나와 다른’ 존재를 시기하고 배척하는 인간사회의 못난 속성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것입니다.》

▶easynonsul.com에 동영상 강의

특별한 재능도 축복 받지 못하면 사회의 저주가 될 뿐

【1】 스토리라인

화장품 외판원인 펙. 화장품을 팔기 위해 가가호호 방문하던 그녀는 어느 날 마을 외딴 언덕에 있는 신비스러운 성에 당도합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성에서 펙은 가위손을 가진 에드워드(조니 뎁)를 만나게 됩니다. 에드워드는 천재 발명가가 만들어 낸 미완성 인간이었죠.

홀로 외롭게 사는 에드워드를 측은히 여긴 펙은 에드워드를 마을로 데려옵니다. 조용하던 마을은 갑자기 시끌벅적해집니다. 에드워드는 예술적인 가위질 솜씨를 발휘해 마을 정원수를 다듬고 애완견의 털을 깎아 주는가 하면 주부들의 머리까지 손질해 주면서 일약 유명 인사가 됩니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펙의 딸인 킴(위노나 라이더)을 사랑하게 되면서 에드워드의 인생은 바뀝니다. 킴의 남자친구인 짐은 킴에게 이런 제안을 합니다. “순진한 에드워드를 꾀어 우리 집을 털게 만들자. 가위손으로 자물쇠를 따게 하면 될 거야.”

에드워드는 도둑질을 하다가 경찰에 붙잡힙니다.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돌변합니다. 에드워드에 대한 온갖 험담을 거짓으로 늘어놓으면서 심지어는 그를 성폭행범으로까지 몰고 가죠.

마을에 환멸을 느낀 에드워드. 결국 자신의 성으로 돌아간 그는 영원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2】 핵심 콕콕 찌르기

영화 속 마을은 일견 지상천국입니다. 파스텔 톤으로 알록달록 단장된 집이며, 자로 잰 듯 잘 정돈된 도로, 그리고 환한 웃음 속에 대화가 꽃피는 가정….

하지만 이런 낭만의 외피를 한 꺼풀 벗기고 들어가면 사정은 다릅니다. 마을은 숨이 막힐 만큼 획일화되어 있습니다.

똑같은 집, 똑같은 자동차, 그리고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인사를 나누고 출근하는 남편들…. 개성이 사라지고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권태에 빠져 있습니다. 전화로 수다를 떨며 사소한 일로도 남을 험담하는 데 중독이 돼 버렸습니다. 안온하지만 몰개성적인 삶에 지친 사람들은 일상의 무료함을 씻기 위한 ‘먹잇감’을 찾는 데 혈안이 됩니다. 급기야 이들은 에드워드를 도마에 올린 뒤 ‘공공의 적’으로 몰아갑니다. 결국 가위손 에드워드는 마을이 선택한 ‘희생양’이었던 겁니다.

그럼 마을 사람들이 에드워드를 모함하고 배척했던 근원적인 이유는 뭘까요? 가위손을 가진 에드워드는 그들과 ‘다른’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나와 다른 존재(타자·他者)를 두려워하고 질시하고 따돌리는 영화 속 마을의 모습은 알고 보면 인간사회의 축소판입니다. 나와 다른 존재가 가진 특별한 재능을 높이 사기는커녕 가증스러운 모함으로 그를 매장하고 마는 인간사회의 이기적이면서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속성….

어떤 특별한 존재가 가진 특별한 재능은 사회에서 ‘순기능’을 할 수도, ‘역기능’을 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 사회가 과연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를 대하느냐’이죠. 우리가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그의 재능은 사회에 ‘축복’이 됩니다. 하지만 시기하고 배척한다면 그의 특별한 재능은 ‘저주’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당초 정원수를 환상적으로 깎아 내는 ‘예술의 도구’였던 에드워드의 가위손이 누군가를 찔러 죽이는 무시무시한 ‘흉기’로 전락하고 말았듯이 말입니다.

【3】 종횡무진 생각하기

에드워드의 가위손은 남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보호수단입니다. 에드워드는 본디 속이 순진하고 여리지만, 위악(僞惡·일부러 악한 체함)적인 가위손으로 자신을 위장하면서 스스로를 보호해 왔던 것이죠.

‘운명의 장난’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에드워드를 지켜줬던 가위손. 하지만 에드워드는 이 가위손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다가갈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얼굴을 쓰다듬거나 누군가를 따스하게 포옹하려 해도, 에드워드의 가위손은 상대의 몸에 치명적인 생채기를 내버리고 마니까요. “날 안아 줘”하고 다가오는 킴에게 “난 못해”라며 찢어지는 가슴으로 거절하는 에드워드의 숙명은 기구하기 짝이 없습니다.

에드워드는 어쩌면 온몸을 가시 털로 무장한 고슴도치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누군가를 진정 사랑한다면 그를 해치지 않기 위해 외려 그로부터 멀리 달아나야만 하는 안타까운 숙명을 짊어졌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여러분, 가수 윤하를 아시죠? 그녀는 ‘비밀번호 486’이란 히트곡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한 시간마다 보고 싶다고 감정 없이 말하지 말아. 백 번을 넘게 사랑한다고 감동 없이 말하지 말아.”

사랑은 “사랑한다”는 짧은 말로 모두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영화 ‘가위손’에서 에드워드는 “사랑한다”는 말 대신,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 평생을 도망쳐 살면서 죽도록 그녀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입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동은 말보다 진한 고백입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