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디세이]푸근한 아날로그 음색에 해외팬 열광

  • 입력 2005년 12월 1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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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깁(왼쪽)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사진 제공 소니비엠지
배리 깁(왼쪽)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사진 제공 소니비엠지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MP3 플레이어가 필수품이 된 21세기, ‘CD시대는 갔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음반의 권위는 땅바닥에 추락한 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MP3’가 CD를 ‘비틀었어도’ 여전히 올해 수백 장의 음반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중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명반이 있다면 바로 ‘컴맹’ 세대 가수들의 음반입니다.

‘더 웨이 위 워’, ‘우먼 인 러브’ 등을 히트시킨 미국 출신 여가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10월, 새 앨범 ‘길티 플레저’를 8년 만에 발표했습니다. 올해 63세의 이 여가수가 혼자는 심심했는지 그룹 ‘비지스’의 멤버 배리 깁(59)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둘은 첫 만남이 아닙니다. 1980년 600만 장의 음반 판매를 기록한 스트라이샌드의 음반 ‘길티’를 만든 주인공이 바로 깁이었습니다. 25년 만에 해후를 한 두 사람, 기쁜 나머지 앨범 제목도 ‘길티 플레저’로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길티 플레저’는 25년 전 그들의 모습과 다른 게 없었습니다. 발음이나 음의 표현이나 자로 잰 듯 정확하지만 차갑지 않고 감성적 호소력이 있는 스트라이샌드의 창법, 가성과 진성을 적절히 섞은 깁의 목소리는 그대로였습니다. 첫 싱글 ‘스트레인저 인 어 스트레인지 랜드’부터 깁과 함께 부른 ‘어보브 더 로’ 등은 2005년 발매된 음반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구닥다리’ 음악입니다. 특히 ‘하이드어웨이’에서는 1980년대 스탠드바에서 흘러나오던 끈적끈적한 색소폰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처음엔 믿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음반이 21세기에 나올 수 있을까. ‘컴맹’ 아니면 절대로 만들 수 없는 음반입니다. 디지털, 차가움, MP3로 점철되는 시대에 두 중년이 만든 음반은 아날로그, 여유로움, LP를 연상케 합니다.

같은 시기,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비슷한 음반이 발표됐습니다. 올해로 데뷔 27년째인 5인조 그룹 ‘서던 올 스타스’ 역시 7년 만에 새 음반 ‘킬러 스트리트’를 발표했습니다. 늘 그랬듯 이들은 기타와 피아노 등 단순한 사운드로 음악을 만들지만 일본인들은 27년 동안 이들의 아날로그 감성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습니다. 이 음반은 발매되자마자 일본의 공신력 있는 음악 차트인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했으며 100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두 음반 모두 귀를 세우고 찾아 들어도 컴퓨터의 흔적은 없습니다. 소리를 원자처럼 세밀하게 쪼개는 디지털 시대에 이들은 컴퓨터를 완전히 무시해 버렸습니다.

애석하게도 한국에서는 이들의 활약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합니다. LP는 옛날 냄새가 나서, CD는 돈 아까워서 MP3를 듣는 젊은 세대는 이들의 사운드를 “구리다”고 평가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들은 자국에서 ‘최고의 가수’, ‘국민 가수’로 평가받습니다.

올해 가요계에서는 ‘SG워너비’, ‘동방신기’, 김종국 등의 음반이 ‘좀 팔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포크 록의 대부 한대수, 한국 록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신중현 등 한국의 아날로그 세대 가수들이 올해 낸 새 음반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올해 말에는 ‘컴맹’도 존경받는 외국 팝 음악계가 부러울 따름입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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