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571>行 樂(행락)

  • 입력 2003년 5월 28일 16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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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 樂(행락)

行-다닐 행 樂-즐거울 락 謀-꾀할 모

削-깍을 삭 奪-빼앗을 탈 斬-벨 참

行은 잘 뚫린 네거리의 모습에서 나온 글자다. 따라서 본디 뜻은 ‘길’이다. 그런데 길은 다니기 위해서 있다. 여기에서 行은 ‘걷다’, ‘다니다’는 뜻도 가지게 되었다. 樂은 두개의 요(실끝 요)와 白(엄지손톱의 흰 부분), 그리고 木(나무)으로 이루어져 있다. 곧 거문고나 비파처럼 나무 위에 매어 둔 실을 손으로 뜯고 있는 모습이 아닌가. 따라서 본디 뜻은 ‘風流’(풍류), ‘音樂’(음악)이다.

音樂을 연주하면 신이 나므로 樂은 ‘즐겁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다만 이 때는 ‘락’으로 발음한다. 참고로 먹으면 ‘즐겁게 되는 풀(초)’이 藥(약)이다. 한약의 재료가 대부분 풀, 곧 藥草(약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또 樂에는 ‘즐기다’, ‘좋아하다’는 뜻도 있는데 이 때의 발음은 ‘요’다. 樂山樂水(요산요수·산수를 즐김)가 있다. 요컨대 樂은 破音字(파음자)인 셈이다. 行樂이라면 ‘이곳저곳 다니면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일종의 쾌락추구라 본디 그리 좋은 뜻은 아니었다.

史記(사기)를 써서 유명한 司馬遷(사마천)의 외손자에 楊운(양운)이 있다. 젊어서 高官(고관)에 올라 得意揚揚(득의양양)했다. 그러나 재주는 넘쳤지만 성격이 모나고 특히 남의 잘못을 들추기를 즐겨하여 많은 이로부터 원성이 자자했다. 사실 그가 高官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남의 謀叛(모반)을 密告(밀고)했기 때문이었다.

후에 同僚(동료)와의 불화로 削官奪職(삭관탈직)되어 서민으로 지내면서도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방자한 言行(언행)으로 천자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보다 못한 친구 孫會宗(손회종)이 글을 써서 충고했지만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면서 도리어 극언을 퍼붓는 글을 보내왔다. 유명한 報孫會宗書(보손회종서)가 그것이다. 그는 여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본디 行樂만 일삼다 갈 뿐, 언제까지나 富貴를 추구하면서 살 것인가.’

이처럼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은 그는 결국 허리를 잘리우는 腰斬刑(요참형)을 받고 죽었다. 行樂의 결과였던 것이다.

봄이다. 휴일이면 전국의 명산과 명승지가 ‘行樂인파’로 온통 만원이다. 그런데 이제는 휴식의 의미도 많이 달라졌다. 단순한 쾌락의 추구라면야 行樂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재생산을 위한 휴식이라면 다소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賞春客(상춘객)이라고 하든지 그냥 ‘봄을 즐기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어떨까.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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