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552>亡 羊 補 牢(망양보뢰)

  • 입력 2003년 4월 1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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亡 羊 補 牢(망양보뢰)

亡-잃을 망 牢-우리 뢰 徙-옮길 사

薪-땔감 신 惑-미혹할 혹 寵-사랑할 총

우리말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중국사람들은 ‘양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고 한다. 비슷한 한자말에 死後藥方文(사후약방문)도 있다. 버스 지나간 뒤에 손 흔드는 것처럼 부질없는 짓을 가리킬 때 하는 말이다. 그것보다는 미리미리 손을 써야 하는데 그것을 뜻하는 말에 有備無患(유비무환)과 ‘未然(미연)에 방지한다’는 뜻의 曲突徙薪(곡돌사신)이 있다.

戰國時代(전국시대) 楚(초)나라에 莊辛(장신)이라는 충신이 있었다. 하루는 국왕의 측근이 나라를 그르치는 것을 보다 못해 襄王(양왕)에게 간언했다.

“왕께서 일부 측근들에 둘러싸여 사치와 음일만을 좇고 국사는 아랑곳하지 않으시니 머지 않아 도읍 영(영·현 湖北省 江陵縣)이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襄王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이 자가 늙더니만 돌았나 보군! 고의로 험악한 말을 하여 민심을 혼란스럽게 하다니…”

하지만 莊辛은 차분히 말을 이어 나갔다.

‘惑世誣民(혹세무민)하자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대왕께서 계속 그 자들을 寵愛(총애)하신다면 그런 위기는 반드시 닥쳐오고야 말 것입니다. 제 말을 믿지 않으신다면 저는 趙(조)로 몸을 숨기고 싶습니다.’

莊辛의 말은 적중했다. 楚를 떠난 지 5개월도 되지 않아 秦(진)은 楚를 쳐서 크게 깨뜨렸고 이 때 襄王은 陽城(양성·현 河南省 息縣)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후회에 빠진 襄王은 급히 신하를 보내 莊辛을 불러와 대책을 물었다. 莊辛은 어이가 없었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토끼를 보고 사냥개를 불렀다면 아직 늦지 않으며 도망친 양(亡羊)을 보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補牢) 역시 아직 늦지 않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가 한 말은 襄王의 어리석음을 비꼰 것이다. 하기야 산토끼를 보고 사냥개를 불러도 늦지는 않겠지만 도망친 양을 보고 나서 외양간을 고치는 것은 이미 늦었다. 일은 때를 가려서 처리해야 한다. 일이 터지고 난 뒤 아무리 허둥대고 손을 써 봐야 소용이 없다. 버스 떠난 뒤 손들어 봐야 서지 않기 때문이다.

대형사고가 잇따르더니만 또 끔찍한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가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어린 초등학생들이 참변을 당했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았던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진작 외양간을 수리했더라면 이런 참사가 발생했을까. 참으로 안타깝다.

鄭錫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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