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삶의 기록-자서전 30선]<17>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

  • 입력 2007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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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큰 실수를 했다거나 내 작업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그리고 결정적인 비판을 받거나 심지어 지나친 호평을 받아서 불쾌해질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뇌면 위안이 되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열심히, 그리고 가장 잘했다. 이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진화론 어떻게 만들어졌나

2009년은 아주 특별한 해다. 내겐 더욱 그렇다. 내 학문의 경전과도 같은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150년이 되는 해다. 그리고 이 책을 쓴 내 학문의 스승 찰스 다윈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지금 서양에서는 2009년 다윈의 해를 맞이할 온갖 사업과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 뉴욕의 자연사박물관은 전례 없이 성대한 다윈 특별전을 마련하여 이미 성황리에 전시를 마쳤고 지금은 세계 순회전시에 들어갔다. 캐나다와 호주의 대표적인 자연사박물관을 거쳐 드디어 2009년에는 영국 자연사박물관에서 각종 이벤트와 더불어 다윈의 해 피날레를 장식할 예정이다.

다윈의 이론에 관한 책보다 다윈 자신에 대한 책이 더 많이 출간됐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는 다윈이 직접 쓴 유일한 자서전이다. 독일의 한 편집자에게서 자서전을 집필해 달라는 제안을 받고 “할아버지가 자기 정신에 대해 쓴 짧은 글이라도 읽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흥분되겠는가”라고 생각하며 손자들을 위해 쓴 글이다.

다윈은 모든 과목을 두루 잘하는 이른바 모범생은 아니었다. 다윈의 위대함은 거의 전적으로 호기심과 상상력이었다. 그는 일찍부터 엄청난 수집가였는데, 특히 딱정벌레를 좋아했다. 어느 날 오래된 나무의 껍질을 벗기다가 진귀한 딱정벌레 두 마리를 발견하곤 양손에 한 마리씩 쥐었는데도 또 다른 종류의 딱정벌레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른손에 쥐고 있던 것을 입에 넣었는데 그놈이 분비액을 쏴 대어 황급히 뱉어 내느라 세 번째 딱정벌레도 잃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사건이 그가 케임브리지대에 있던 시절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의 나이는 호기심을 잠재우는 데 철저히 실패했다.

다윈의 진화론, 즉 자연선택론은 지난 한 세기 반의 혹독한 검증 과정을 거치며 생명의 본질과 역사를 설명하는 가장 탁월한 이론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훌륭한 이론이란 논리의 완벽함과 더불어 간결성과 적응성을 지녀야 하는데 자연선택론은 이런 점에서 거의 완벽하다. 이 책에는 그가 어떤 계기로 비글호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할 수 있었으며 어떤 사람과 사건들이 그의 이론이 확립되는 과정에 영향을 미쳤는지가 잘 나와 있다. 그의 이론도 그의 삶과 더불어 ‘서서히 진화해왔다’.

서양에서는 다윈을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10인 중 한 사람으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다윈의 이론은 단순히 학문 세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 인간의 의식구조에 근본적 변화를 일으킨 위대한 사상가다. 이제 더는 우리 주변에 세상 모든 것이 영원불변하다고 믿는 이는 없다. 사물은 끊임없이 변하고, 그들 간의 관계는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독자들도 드디어 인간 다윈, 그리고 위대한 사상가 다윈을 새롭게 발견하기 바란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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