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의학공정 맞서 동의보감 ‘국적’ 알려야”

  • 입력 2009년 8월 3일 02시 55분


16년째 번역작업 몰두 박석준 동의과학연구소장

“중국에서는 동의보감을 영어로 번역해 중의학 공정에 나서고 있습니다.”

1993년부터 동의보감(東醫寶鑑) 번역에 매달려 내경편(內景篇) 외형편(外形篇)을 펴낸 박석준 동의과학연구소장(50·들꽃 피는 요양병원장·사진)은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나서도 걱정이 먼저 앞선다”고 말했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고 해도 한국 한의학의 독자적인 성과로 동의보감을 알리는 과제는 남아 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 심사위원들은 “동의보감은 내용이 독특하고 귀중하며 오늘날에도 사용되는 등 동아시아의 중요한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박 소장은 “앞으로 중국이 동의보감을 자국의 전통의학에 포함시키려는 시도는 더욱 다양화해질 것”이라며 “중국은 1960년대에 이미 중의학 집대성을 끝내고 이후 중의학 세계화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삼대에 걸쳐 한의사라는 가업을 잇고 있는 박 소장은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대전대 한의대에 입학해 뒤늦게 한의학을 공부했다. 한의대생 시절 동의보감을 배웠지만 이후 다시 읽을 때마다 ‘과연 동의보감을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의술서로서 임상적인 내용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의술의 배경인 동양철학을 알지 못하고 동의보감을 보면 그저 다른 의서들을 짜깁기한 책으로 보일 뿐이었습니다.”

박 소장은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시도 중인 영어 번역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두 번의 전쟁에 휩쓸리고 난 뒤의 조선 당시 상황, 그에 따른 철학적 배경을 알지 못하면 동의보감의 독창성을 살려 번역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 소장은 “전쟁 이후 황폐해진 조선에서는 스스로 자기 몸을 고치는 ‘개인 양생’(養生)이 중요했다”며 “약재도 중국에서 들여 온 것이 아니라 주변에 흔히 있는 약초들로 토착화된 처방을 내렸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에서는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 기념사업단’이 올해부터 영어 번역을 시작했으나 아직 걸음마 단계다.

중국 중의학계에 맞서 동의보감의 세계화를 이루려면 한국 한의학계가 분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박 소장은 “중의학을 공부한 한의사들이 동의보감에서 어렵게 우리 약재로 바꾸어 놓은 처방을 다시 중국 약재로 바꿔 놓는다”며 “한국 한의학의 독자적인 성과를 인정받으려면 한의학계부터 동의보감을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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