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여백]패션디자이너 지춘희

  • 입력 2008년 12월 12일 05시 39분


“틈만 나면 재래시장에… 사람 사는 맛 나거든요”

《당대 최고의 연예인들을 한자리에서 보고 싶다면 어디로 가면 될까. 패션 디자이너 지춘희(54·미스지 컬렉션 대표) 씨의 패션쇼라면 정답에 가까울 것 같다.

한국 최고의 디자이너 중 한 명인 그의 패션쇼 관람석엔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스타’들이 공존한다.

강수연, 심은하, 차예련….

이미지를 먹고 사는 스타들은 그의 옷을 입고 싶어 한다.

해외 브랜드의 득세 속에서 그는 국내 패션업계의 자존심이자 희망이다. 그런 그에게 동아일보 위크엔드 ‘삶의 여백’의 주인공이 돼달라고 하자 그는 “글쎄, 평소 재래시장에 자주 갈 뿐이라….

최근 김장을 배추 100포기 했고요. 그게 기사가 될까요?”라고 했다. “당연히 기사가 된다”고 했다.》

○ 자연의 밥상, 자연을 닮은 옷

3일.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인터뷰하자는 그의 제안에 서울 강남구 청담동 미스지 컬렉션 본사를 찾아갔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매장을 혼자 둘러봤다. 좋은 원단을 쓴 재킷과 코트는 갈색, 감색, 회색 등 평소 그가 즐겨 내놓는 세련된 색상들이었다. 보라, 분홍, 초록 등이 악센트 색으로 사용됐는데 색감이 고급스러웠다.

롱스커트와 통이 넓은 바지는 여성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벨벳 장식과 어울려 독특한 멋을 이뤘다. 커다란 동백꽃 모양의 코르사주 장식은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질 정도였다. 이번 시즌 유행 아이템인 패딩 코트는 신소재를 사용했다. 걸쳐 보니 깃털처럼 가벼웠다.

“우리, 점심 먹으러 가요.”

식당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그는 사무실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그의 집은 시끌벅적한 청담동에 있지만 오아시스 같이 청량한 공간이었다. 정원엔 사과나무와 때죽나무 등이 보였고, 검정 고무신도 몇 켤레 놓여 있었다. 직접 키운 사과들이 광주리에 담겨 있는데, 두고두고 아껴 먹는다고 했다.

보일러로 난방을 하는 거실 마루 한쪽엔 거위털 이불을 덮어 놓아 온돌방 아랫목처럼 따뜻했다. 그곳에 작은 소반 두 개가 나왔다. 집주인의 넉넉한 인심을 짐작케 할 정도로 반찬이 푸짐했다. 대구 맑은탕, 고들빼기, 두부조림, 냉이무침, 가자미식혜…. 전통 옹기에 담긴 디저트는 그중 진미(珍味)였다. 올여름 얼려둔 산딸기를 꿀과 함께 갈아 냈는데, 그 어떤 서양식 셔벗보다 맛있었다. 찹쌀가루 반죽 안에 고명을 넣어 유자청을 묻혀 내는 경단도 그가 자주 만드는 디저트란다.

“사는 게 별건가요. 제철 음식 맛있게 먹으면 그게 제일이죠”라는 그에게 물었다. 여자를 아름답게 해 주는 미스지 컬렉션 옷의 비결이 무엇인지.

“늘 자연의 색을 참고해요. 같은 초록이라 해도 햇빛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거든요. 나무는 헐벗으면 나름대로 좋고, 단풍은 풍요롭죠. 꼭 끼는 옷은 불편해요. 일반적으로 어깨가 좁고 엉덩이가 큰 한국 여성의 보디라인을 고려하면서 옷에 숨쉴 틈을 만듭니다.”

그는 몇 년 전엔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래미안 아파트 인테리어를 맡으며 풀잎 색 세면대 등 여성스러운 감성을 선보인 바 있다. 그의 디자인 촉각은 의식주 전반에 걸쳐있는 셈이다. 젊은 감각을 지닌 그는 최근엔 국내 그룹 ‘더블유앤웨일(W&Whale)’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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