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위크엔드]‘게이샤의 추억’을 사세요

  • 입력 2005년 12월 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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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뉴욕의 뷰티업계는 오리엔탈 무드에 사로 잡혀있다. 벚꽃이 그려진 붉은 병을 사용한 향수 ‘차이나 타운’(위)과 영화 ‘게이샤의 추억’ 개봉에 맞춰 신상품으로 출시된 ‘게이샤의 추억 뷰티 컬렉션’.뉴욕=최영은 통신원
연말 뉴욕의 뷰티업계는 오리엔탈 무드에 사로 잡혀있다. 벚꽃이 그려진 붉은 병을 사용한 향수 ‘차이나 타운’(위)과 영화 ‘게이샤의 추억’ 개봉에 맞춰 신상품으로 출시된 ‘게이샤의 추억 뷰티 컬렉션’.뉴욕=최영은 통신원
연말 뉴욕의 뷰티업계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새로운 뮤즈를 찾은 듯하다.

대표 주자는 화장품 회사 ‘프레시(fresh)’. 프레시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해 23일 미국에서 상영 예정인 ‘게이샤의 추억’에서 영감을 얻은 보디 케어, 메이크업 제품, 향수 라인을 선보였다. 이 작품은 작가 아서 골든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어릴 때 일본 도쿄의 게이샤 하우스에 팔려 온 사유리가 거치는 인생사와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 ‘시카고’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롭 마셜이 감독을 맡고, 중국 장쯔이(章子怡) 궁리(鞏리)와 일본 와타나베 겐 등 미국에서 인지도가 높은 동양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다.

프레시 화장품은 영화의 배급사인 소니 픽처스와 연계해 ‘게이샤의 추억 뷰티 컬렉션’을 연말 기획 상품용으로 선보였다. 이 회사는 동양의 전통 미용법을 제품화했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프레시는 영화에 나오는 사케(일본 청주)를 이용한 목욕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사케와 자스민 잎을 첨가한 목욕 용품, 진주 가루를 첨가한 파우더와 장미 잎을 말린 마스크 팩 등 게이샤의 추억에 소개되는 비법을 바탕으로 한 제품들을 내놓았다.

의류 브랜드인 ‘바나나 리퍼블릭’도 기모노 스타일의 드레스를 비롯해 동양에서 영감을 얻은 의류 가방 신발이 포함된 연말 기획 상품을 선보였다. 바니스 백화점은 게이샤의 머리 장식 핀과 유사한 산호 장식의 머리핀을 판매하고 있다.

미국시장에 진출한 일본 화장품 브랜드로서도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는 호기가 아닐 수 없다. 이들도 대대적인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슈에무라 화장품은 수백 년간 가부키 배우들과 게이샤들이 사용해 온 전통 와카베 메이크업 브러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수제 ‘보탕 파우더 브러시’를 내놓았다. 도쿄에 있는 슈에무라 씨의 아틀리에에서 제작된 브러시는 250개 한정 수량으로 미국에서 판매됐다. 마돈나와 사라 제시커 파커 등 유명 스타들이 구입해 화제가 됐다.

오리엔탈 트렌드에 신제품만 가세한 게 아니다. 유명 브랜드의 클래식 아이템들도 이 트렌드에 힘입어 재조명받고 있다. 시세이도 화장품은 108년 전 처음 출시한 ‘오더마인 리바이털라이징 로션’의 품질과 용기를 업그레이드시킨 제품을 내놨다.

중국 스타일도 오리엔탈 트렌드를 이끄는 데 한 몫하고 있다. 아시아의 이국적 매력을 제품에 반영해 온 샤넬 화장품은 최근 ‘상하이 레드’의 새빨간 매니큐어와 립스틱을 트렌드 컬러로 제시했다.

프랑스 향수전문가 로히스 라흠의 ‘본드 넘버 나인’도 이번 시즌에는 빨간 바탕에 벚꽃 프린트가 있는 병에 담긴 ‘차이나 타운’이라는 신제품을 내놨다. 이 제품은 유명 백화점 ‘삭스 피프스 애비뉴’ 뷰티 플로어의 한가운데를 장식하면서 크리스마스 쇼핑 고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카르티에의 향수 ‘르 바이제 두 드라곤’은 중국 문화의 동경과 아르데코 스타일을 조화시킨 클래식 향수 중 하나이지만, 연말에는 버그도프 굿맨 등 뉴욕 인기 백화점의 홀리데이 디스플레이에 올랐다. 연말 뉴욕의 오리엔탈 트렌드를 엿보게 하는 사례다.

영화를 앞세운 이 같은 오리엔탈 트렌드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층도 있다.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는 마리 무추키 모켓 씨는 “일본의 많은 온천에 다녀봤지만, 사케를 이용한 목욕법을 경험해 본 적 없다”며 “프레시 화장품에서 소개하는 메이크업 제품들도 상술일 뿐이다. 게이샤의 메이크업과 화장품의 성분을 진주에서 추출해 붓으로 바르는 립스틱과는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이 같은 트렌드는 동양을 향한 서양의 또 다른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과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더 많다. 캐서린 세페다(31·의류업) 씨는 “타국의 문화를 빌려오는 것과 타국의 문화를 재조명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며 “영화는 현실이 아닌 영화일 뿐이고, 화장품은 화장품일 뿐”이라고 말했다.

뉴욕=최영은 통신원 blurch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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