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위크엔드]佛“벼룩시장 질서 바로잡겠다” 전면전

  • 입력 2005년 9월 2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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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프랑스 파리 남쪽 방브에서 열린 벼룩시장. 최근 프랑스 정부는 벼룩시장의 상거래 질서를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방브=김현진 사외기자
지난달 말 프랑스 파리 남쪽 방브에서 열린 벼룩시장. 최근 프랑스 정부는 벼룩시장의 상거래 질서를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방브=김현진 사외기자

“이거 얼마인가요?” “5유로입니다.” “3유로에 주세요.”

“안 돼요. 노래 테이프 끼워 줄 테니까 5유로에 갖고 가세요.”

2유로를 놓고 흥정이 벌어졌다. 흥정이라기보다 기 싸움에 가깝다. 손님은 사기그릇과 노래 테이프를 모두 집어 들고 상인의 손에 4유로를 쥐여 주며 싱긋 웃는다. 큰 손해를 본 양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한번 짓고는 돈을 받아 넣는 상인….

지난달 27일 프랑스 파리 남쪽 방브에서 열린 벼룩시장의 풍경이다. 매주 토요일 벼룩시장이 열리는 이곳에는 최근 들어 가장 많은 상인과 손님들이 쏟아져 나왔다. 본격적인 벼룩시장 시즌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것. 긴 바캉스 기간이 끝나고 파리에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는 8월 말부터 벼룩시장 개장을 알리는 플래카드나 광고판이 곳곳에 들어선다. 벼룩시장 정보를 담은 ‘콜렉시옹’ 등 잡지에도 전국의 장 소식이 빼곡히 찬다. 3일부터 이틀간 프랑스의 북부도시 릴에서 열리는 ‘라 브라데리(La Braderie)’가 시작되면 가을 벼룩시장은 본격화한다. ‘라 브라데리’는 매년 9월 첫째 주말에 열리는 유럽 최대의 벼룩시장. 중세 시대 하인들이 주인이 남긴 물건들을 마을 시장에서 팔 수 있게 허가하는 법이 제정된 이래 개설된 시장으로 공원이나 광장에 꼬불꼬불 설치된 장사꾼들의 판매대가 100km에 이른다.

프랑스 정부는 최근 “벼룩시장의 질서를 바로잡겠다”고 발표했다. 전문 상인들이 지나치게 활개치면서 벼룩시장의 본래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프랑스의 벼룩시장에선 주로 중고품과 골동품이 거래된다. 그래서 벼룩시장은 프랑스어로 중고품이나 골동품을 뜻하는 ‘브로캉트(brocante)’로도 불린다. 하지만 또 다른 이름인 ‘비드 그르니에(vide-grenier·다락 비우기)’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집에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손때 묻은 살림들을 들고 나와 서로 사고파는 게 벼룩시장의 취지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은 팬티만 달랑 입은 바비 인형, 수화기만 남은 전화기, 이 빠진 접시 등을 들고 나와 1, 2유로를 부른다.

전문 상인들은 이 가운데 상품이 될 만한 고(古)가구나 그림 등을 사들여 손질한 뒤 비싼 값을 매겨 다시 내놓는다. 문제는 이들 전문 상인의 비중이 전체 벼룩시장의 90%를 차지하면서 불법과 편법이 횡행한다는 점이다.

일반인들이 ‘다락 비우기’를 통해 물건을 팔 수 있게 된 것은 19세기부터다. 프랑스 정부는 판매 수익에 따른 소득세법과 물건 매매와 관련된 법을 따르지 않고도 가정에서 더는 쓰지 않는 물건들을 광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전문 상인들은 벼룩시장에 대거 진입해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거나 탈세하는 등으로 벼룩시장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

일간지 ‘르 파리지엔’은 최근 “브로캉트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자릿세를 내고 몰래 뒷거래를 하는 전문 상인들도 생기는 등 거의 ‘마피아’ 수준의 부정이 횡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뒷거래 비용은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프랑스 앤티크 및 중고 비즈니스연합의 미셸 고멕스 회장은 “전문 상인들은 한 시장에서 물건을 싹쓸이한 뒤 다음 날 다른 곳에서 몇 배의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동차로 불과 30∼40분 거리인 ‘셸즈’와 ‘클리냥쿠르’에서 열린 두 브로캉트를 찾았을 때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셸즈에서 인심 좋은 아저씨가 판 5유로짜리 낡은 램프가 클리냥쿠르에 있는 전문 상인의 매대에서는 400유로의 가격표를 달고 있었다. 외양이 손질되어 있고, 전선이 정비되어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크기와 디자인은 거의 동일했다.

브로캉트에 ‘프로’들의 손길이 뻗친 것은 프랑스의 중고품, 심지어 고물 같은 물건들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모던보다 클래식 분위기의 멋을 찾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프랑스 내에서도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 덕분에 브로캉트는 전성기를 맞고 있다. 최근에는 10년 전보다 5배나 늘어난 5만여 개의 시장이 프랑스 전역에서 열리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필자는 셸즈의 브로캉트에서 무명 작가의 작품임이 분명하지만 거실에 두기에 손색이 없는 대형 유화를 액자를 포함해 5유로에 샀다. 클리냥쿠르에서도 “프랑스의 유명 작가 작품”라는 상인의 말을 믿는 체하면서 40유로짜리 정물화를 25유로로 깎아 구입했다.

파리에서는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물건이 가치있는 앤티크나 대가의 작품으로 판명되면서 ‘대박’을 맞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간혹 들린다. 물건의 가치를 서로 모르는 거래에서 횡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일행도 내 그림을 보고 “얼떨결에 샀지만 대박 나는 것 아니냐”며 웃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전문 상인들이 그런 꿈마저 앗아갔다고 말한다. 전문 상인들이 물건의 가치를 파악한 뒤 부가가치를 더해 ‘확실한 가격’으로 판매하기 때문이다.

파리=김현진 사외기자 kimhyunjin517@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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