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깊이듣기]'도레미' 음계가 진부하다뇨

  • 입력 2001년 1월 14일 20시 08분


필립 케니코트 선생께

2000년 12월31일자 워싱턴 포스트에 쓰신 ‘새로운 작품, 똑같은 옛 이야기’ 제하의 칼럼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화가 단단히 나셨더군요.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영화음악가인 마이클 카멘의 작품을 연주한 것을 놓고 말입니다.

선생은 카멘의 작품이 할리우드 스타일에 영합하는 ‘잡종’음악이며, 이런 곡을 공연장에 끌어들이는 것은 ‘진지한’ 작곡가들에게 돌아가야 할 작은 경제적 보조마저 빼앗아가는 것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저는 선생의 논지에 대체로 공감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런 저런 장르에서 마음에 드는 요소만 골라서 짜깁기하는 음악에서는 주목할만한 독창성이나 미학적 혁신을 기대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의 주장 속에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었다는 점도 저는 분명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선생은 카멘의 음악이 ‘진부함과 천박함, 수명을 다한 자연조성(調性)을 대표하는 음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서까지 (도레미파솔라시의 자연음계에 의한 음조직체계인) 자연조성을 ‘진부함, 천박함’과 동렬에 놓는다는 것, 더 이상 효용을 갖지 않는 것으로 치부한다는 것이 저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20세기 초 아놀드 쇤베르크는 자연조성에 따른 음악이 더 이상 발전가능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새로운 음계적 질서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그러나 이후 수십년동안 수 많은 작곡가들이 그 신질서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조성을 벗어나는 음악은 작곡가들의 작업실과 한정된 수의 연주회장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필립 글래스, 아르보 페르트 등 수많은 현대음악가들이 70년대 이후 자연음계에 따른 명작으로 격찬과 공감을 얻은 사실을 선생께서는 외면하고 계시는지요.

이 순간도 전세계의 어린이들은 자연음계에 따라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프랑스 국영 라디오가 발매한 세계의 유명 종족음악 시리즈 ‘오코라’를 아십니까. 저는 남태평양의 고립된 군도에서 아프리카의 오지에 이르는 수많은 지역의 민속음악을 들었습니다. 서양음악의 7음계와는 크고 작은 차이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중 자연음계의 질서를 벗어났다고 생각되는 음악은 없었습니다.

케니코트 선생. 진정 묻겠습니다. 자연음계의 음악은 진부하며 발전가능성이 없습니까. 아니 질문을 바꾸어보겠습니다. 쇤베르크가 생각한 것처럼, 자연음계란 인간이 편의적으로 만들어낸 것이어서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까. 오히려 그것은 인간의 가슴 속에 탄생 이전부터 원형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요.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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