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김연종/‘유모차’

  • 입력 2007년 8월 3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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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그러진 유모차를 끄는

노파가 있다

새벽시장 갈 때도

노인정에 나갈 때도

늘 유모차와 동행한다

할머니와 유모차 사이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던 손주 놈도

제 몸의 추를 스스로 다스리면서

유모차 밖으로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이제 빈 유모차와 노파 사이 기울어진 추를

벽돌 두 쪽이 대신하고 있다

벽돌 대신 간혹 무 다발을 싣고

리어카보다 더 빠르게

찌그러진 유모차를 끌고 있는

노파가 있다

―시집 ‘극락강역’(종려나무) 중에서》

나는, 노파를 끌고 가는 유모차를 보았다. 자꾸만 구부러지는 허리를 세워 주며, 자꾸만 헛딛는 발을 불러들이며, 자꾸만 어딘가에 부딪는 몸을 대신 막아주는 효자 같은 유모차를 보았다. 꿩처럼 흩어진 아들과 며느리, 노루처럼 달아난 손주 대신 저 사려 깊은 ‘네 바퀴 효부’는 행여 가벼운 제가 뒤집힐세라 벽돌 손주를 입양했구나. 살아온 내력처럼 우툴두툴한 보도를 달달거리며 유모차가 노파를 끌고 저문 강 저 너머까지 가는 걸 보았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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