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이용한 ‘이상한 밥상’

  • 입력 2006년 11월 1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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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밥상 - 이용한

어느 날 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1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밥상을 차리고 계신다 10년 전보다 20년은 더 젊어진 어머니는 콩나물 무치던 손으로 이제는 늙어버린 내 손을 밥상 앞으로 잡아끈다 왜 이렇게 늦은 거냐, 밖에서 또 놀다 온 거냐? 젊은 어머니의 잔소리를 참아내며 늙은 내가 밥을 먹는다 어머닌 참, 내가 아직도 어린애인 줄 아세요? 그럴 때마다 이놈 자식이, 어머니의 싱싱한 손이 낡은 내 엉덩이를 후려친다 너는 커서 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냐? 어머니, 난 이미 어머니만큼 살았고, 인생의 절반을 시인으로 살았으면 됐지, 뭐가 또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도 이놈이, 밥 흘리지 말랬더니, 그거 다 저승 가서 먹어야 해! 어느 날부턴가 다 낡은 나에게 싱싱한 어머니는 죽지도 않는다.

- 시집 ‘안녕, 후두둑 씨’(실천문학사) 중에서

다 된 저녁 무렵, 사립문 밖으로 새어나오던 모자간의 밥상머리 실랑이 소리가 바로 저 집이었구나. '늦게 오고, 놀다 오고, 말대꾸하고, 밥풀 흘리는 걸 보니 저 늙은 아들 나이를 헛먹었구나. 엉덩이 맞아도 싸지 싸.' 킬킬 웃으며 길을 재촉하려니 저녁 이내 탓일까, 왜 이리 눈앞이 흐려 온다냐. 뿌연 눈꺼풀 영사막으로 젊은 내 어머니가 달려 나오신다. '얘, 어디 갔다 이제 오니? 밥은 먹었니? 옷 좀 따뜻하게 입지 않구.' 나이 들면, 도처에서 어머니가 돌아오신다.

-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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