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슬픔…김현승

  • 입력 2004년 10월 31일 19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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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나를

어리게 한다.

슬픔은

죄를 모른다,

사랑하는 시간보다도 오히려.

슬픔은 내가

나를 안는다,

아무도 개입할 수 없다.

슬픔은 나를

목욕시켜준다,

나를 다시 한 번 깨끗게 하여준다.

슬픈 눈에는

그 영혼이 비추인다.

고요한 밤에는

먼 나라의 말소리도 들리듯이.

슬픔 안에 있으면

나는 바르다!

신앙이 무엇인가 나는 아직 모르지만,

슬픔이 오고 나면

풀밭과 같이 부푸는

어딘가 나의 영혼……

― 시집 ‘가을의 기도’(미래사) 중에서

슬픔을 위해 기쁨을 삼갈 것까지야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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