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교수의 여가클리닉]화투에 미친남편 미사리조정장으로

  • 입력 2002년 7월 25일 16시 07분


Q: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사는 서정아입니다. 저희 남편은 화투를 매우 즐깁니다. 남편 친구들 가족과 함께 보낸 지난 휴가 때도 남자들끼리는 내내 화투와 포커놀이만 했어요. 이번 휴가 때도 친구들 가족과 함께 가자고 합니다. 물론 화투놀이 때문이죠. 이런 휴가를 또 함께 가야 하나요?

A:여름에 계곡마다 쳐 놓은 그늘막 텐트 아래서 남자들이 하는 대부분의 놀이는 화투입니다. 사실 대한민국 남자들이 엉덩이를 붙이고 모여 앉으면 하는 화투놀이는 오래 전부터 국가적 고민거리입니다.

전문가들은 도박중독과 같은 병명을 대며 엄포를 놓지만 상황이 그리 달라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겁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거든요. 사실 전문 도박꾼이 아닌 바에는 대부분 푼돈을 걸고 놀이를 합니다. 일본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나쁘다고 하는 것은 너무 소심한 이야기 같고요. 정말 그래서 나쁘다면 일본인들이 김치 먹는 것도 좋아하지 말아야 합니다.

화투놀이의 나쁜 점은 참여인원이 제한돼 있다는 것입니다. 대개 남자들의 몫이죠. 여자들은 옆에서 과일이나 깎고 기껏해야 ‘광’이나 팔게 하죠. 이때 화투는 가족내의 은밀한 권력관계를 분명히 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됩니다. 더 나쁜 것은 사람들 사이의 대화를 막는다는 겁니다. 뒤집어 보면 대화하며 즐기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나라 남자들에게 화투놀이는 아주 훌륭한 도피처가 되는 거죠. 서로 대화할 줄 모르기에, 또 서로 눈 마주치고 대화하는 것이 불편해서 화투놀이를 하는 겁니다.

서정아씨 남편의 경우에도 부부가 서로 대화하며 휴가기간을 보낼 능력이 없기에 남편이 화투놀이로 피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일년에 며칠을 보내는 휴가마저도 매번 친구 가족들과 보내려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고요.

본격적인 휴가가 시작되기 전, 함께 미사리에 한번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요? 요즘 화, 수요일에 미사리 조정경기장에서 경정이 열립니다. 경정(www.motorboat-race.or.kr)이란 경마처럼 보트경주에 내기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화투를 좋아하는 남편이 내기를 싫어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7월말부터는 야간 경기도 한답니다. 시원한 물보라를 날리는 보트경기를 손잡고 구경한 뒤 근처 카페에 들러 연애시절 함께 좋아했던 노래도 들으며 와인 한잔 하는 겁니다. 히딩크처럼. 술이 깰 때까지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함께하는 시간의 즐거움을 다시 기억하게 되겠지요.

일년에 며칠에 불과한 휴가기간에 가족간의 대화가 없다면 무척 아쉬운 일입니다. 그런 휴가에서조차 화투놀이로 즐거움을 찾고자 한다면 그건 거의 재앙이라고 할 수 있죠. 함께 사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는 여름이었으면 합니다. www.leisure-studies.com

김정운 (명지대 여가정보학교수·심리학 박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