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교수의 여가클리닉]외국문화원에서 알찬 휴가를…

  • 입력 2002년 7월 4일 16시 20분


Q: 박기연이라고 합니다. 70, 80년대만 하더라도 여름은 당구장에서 보내곤 했습니다. 요즘이야 냉방시설이 아주 흔하지만, 당시에는 보통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원한 공간은 당구장뿐이었어요. 이번 여름휴가 기간에는 시원한 곳에서 조용하게 보내고 싶은데 어디 좋은 곳을 추천해 주시겠어요? 이 나이에 다시 당구장에서 여름을 보내기엔 좀 쑥스럽네요.

A: 이 땅의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당구장은 무척 행복한 공간이었습니다. 전기료를 아끼지 않고 틀어주는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하게 제공되는 각종 요구르트와 냉커피, 그리고 그 곳에서 시켜먹는 자장면은 정말 압권이었지요. “아줌마 여기 났어요!”하며 돌아서 나오는 당구장 문 바깥 세상은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만큼 허걱스럽게 뜨거웠습니다.

당구장만큼 행복한 공간은 아니지만 외국 문화원에서 휴가를 보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포스트 월드컵의 허전함도 달랠 겸 다양한 외국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서울역 근처로 이사한 프랑스문화원이나 남산의 독일문화원의 시설은 참 훌륭합니다. 당구장만큼이나 시원한 도서관에서는 각종 멀티미디어 자료를 즐길 수 있고 문화원에서 제공하는 각종 문화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고양시에 있는 중남미문화원(www.latina.or.kr)은 개인이 운영하는 박물관으로 각종 중남미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문화원 건물 자체가 예술작품인 이곳에서는 정통 스페인 요리도 즐길 수 있어요.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느낌이 들 정도로 볼거리가 많습니다. 중남미의 정서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구석구석 신경 써서 잘 가꾼 곳입니다.

사실 문화는 정서, 즉 느낌을 공유하는 방식입니다. 수학적 논리나 이성적 추론은 문화에 따라 별 차이가 없지만 정서를 공유하는 방식은 문화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그래서 문화적으로 고유한 정서를 표현하는 단어는 다른 나라의 언어로 잘 번역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정(情)이란 단어는 서양언어로 잘 번역되지 않지요. 이번 월드컵 기간에 외국인들을 감동케 했던 것은 바로 이 정이었지요. 이러한 정서는 잘 눈치챌 수 없는 공간의 배치, 색과 디자인 등의 차이를 통해서도 전달됩니다. 외국문화원에 들어서는 순간 경험하는 이국적인 느낌은 바로 이 때문이죠.

당구장 또한 느낌을 공유하던 공간이었습니다. 마땅히 할 일 없던 사내들이 불어 터진 자장면과 불량 요구르트를 매개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함께 위로했던 곳이기에 지금도 길거리의 당구장 표시는 정겹습니다. 그런데 요즘도 ‘300 이하 찍어치기 금지’인가요?

www.leisure-studies.com

김정운 명지대 여가정보학과 교수·심리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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