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현장칼럼]집안 해충과의 전쟁

  • 입력 2002년 11월 14일 17시 43분


세스코 소속 전문방제 기술자들이 바퀴벌레 방제작업을 진행 중이다./신석교기자
세스코 소속 전문방제 기술자들이 바퀴벌레 방제작업을 진행 중이다./신석교기자
공무원으로 지난해 정년을 맞은 A씨(61·전북 전주시 효자동)는 퇴직 후 자신의 아파트(40평)에 바퀴벌레가 우글거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종일 집에 있다 보니 심각성을 체감한 것. A씨는 바퀴벌레 발견일시 및 장소, 크기, 마릿수, 운동상태를 메모(표 참조)했다.

‘2002년 7월 20일 14시30분, 거실 출입문 입구, 15㎜ 크기의 한 마리가 뒤집힌 상태로 허우적거림.’ 2월4일 아파트를 찾은 해충 방제회사 직원에게 A씨가 말했다. “적을 알아야 싸움에서 이긴다. 이건 전쟁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15평 원룸을 2001년 구입한 B씨(39·여)는 아주 작은 점 크기의 벌레(먼지다듬이)가 하루가 멀다 하고 먼지처럼 허옇게 쌓이는 모습에 기겁했다. 살충제를 뿌리다 못해 B씨는 벌레의 서식처로 의심되는 소파, 침대, 식탁, 옷장, 텔레비전까지 차례로 내다버렸지만 벌레는 잦아들지 않았다. 결국 집을 내놓았다. 원룸은 1주일 만에 B씨가 구입한 가격에 팔렸다. 집을 보러온 사람들은 텅 빈 원룸을 보고 “가구가 없어 시원하고 넓어 보인다”면서 욕심냈다. B씨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러나 ‘벌레가 많다’면서 집을 내놓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2000년 대전으로 이사한 패스트푸드업소 지점장 C씨(42)는 입주 후에야 33평 아파트가 바퀴벌레 소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위생에 민감한 C씨는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퀴벌레”라며 “이런 줄 알았다면 집값이 아무리 싸도 계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C씨는 집안 구석구석 바퀴벌레들의 활동 상황을 캠코더에 담고 있다. 전 주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다.

해충과의 전쟁이 치열하다. 바퀴벌레, 개미, 먼지다듬이, 톱가슴머리대장, 권연벌레, 집먼지 진드기 등 해충은 알레르기와 천식을 일으킬 수 있다. 세균성 질병도 유발한다. 옷장, 마루, 소파, 싱크대, 문지방 속, 라면봉지 속, 벽과 단열재 사이, 천장 몰딩 부분, 액자 뒤, 이불, 피아노 속, 텔레비전 속, 라디오 속, 냉장고 모터 뒤, 전자레인지 속, 메밀베개 속 등 기상천외한 장소를 서식처 삼아 신출귀몰한다. 이삿짐이나 시장바구니, 외출했다 귀가하는 사람의 옷, 집수리 때의 마루 재료 등을 통해서도 유입된다. 계란 껍질 위에 보일락말락한 알로 붙은 채로도 들어온다.

최근에는 화이트나 베이지, 크림 계열의 밝고 무늬 없는 벽지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아 바퀴벌레와 개미가 특히 눈에 잘 띈다. “목욕탕에 전갈이 있다”는 신고가 119에 종종 접수되지만, 열이면 열 거대한 집게벌레로 밝혀질 만큼 해충에 대한 공포심에 비해 그에 관한 지식은 일천하다. 일부 이사업체는 연기를 피우는 훈연식 살충제로 이삿짐을 소독해 주는 서비스로 손님을 끈다.

●해충방제 업체를 찾는 사람들

해충을 ‘목격하는’ 것에서만 공포가 유발되는 게 아니다. 2000년 4월 서울 노원구 중계동 한 아파트에 사는 30대 후반 부부가 해충방제업체에 ‘바퀴벌레를 박멸해 달라’고 의뢰했다. 부부는 모두 시각장애인이었다. 부부는 “‘싹쓱싹쓱’하는 바퀴벌레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면서 “천장에 기어다니다가 바닥에 떨어질 때 나는 ‘툭’ 하는 소리도 참기 어렵다”고 했다.

노인 중 일부는 그리마나 개미를 ‘돈 벌레’라 하여, 잡기는커녕 ‘보존’하려 들기도 한다. 그리마와 개미는 따뜻하고 음식물이 있는 곳에 많이 살기 때문에 예로부터 부(富)의 상징이었다. 노인들은 “돈 벌레는 죽이지 말고 바퀴벌레만 골라 죽여달라”며 옵션을 걸기도 하며, “흰색 바퀴는 ‘길조’이니 죽이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바퀴는 외골격을 갖고 있어 성장하려면 껍질을 벗어야 하는데, 껍질을 벗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바퀴가 흰색을 띤다.

속칭 미아리 ‘텍사스’나 청량리 ‘588’ 등 사창가도 해충방제업체의 큰 고객이다. 사창가에는 옆집과 연결되는 비밀통로나 비밀 쪽방 등 각종 구멍과 틈새가 많아 해충이 살기 좋은 환경이 조성된다. 방마다 욕실이 있어 습도가 높고 따뜻하며 외부인의 출입이 잦은 러브호텔에선 흰개미나 그리마 등 비교적 특수한 해충들이 발견되지만, 24시간 방이 비는 경우가 별로 없어 해충방제 기술자들이 작업에 애를 먹기도 한다. 정신집중이 요구되는 동자보살집이나 교회, 성당에서도 방제의뢰가 쇄도한다. 사찰에서도 “부엌에 창궐하는 바퀴벌레를 죽여달라”고 할 정도로 해충은 ‘생명’의 범주 밖에 있다.

음식물이 많은 식당의 경우 해충방제를 둘러싼 분쟁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서울 용산구 D식당은 최근 방제업체에 정기 방제서비스를 의뢰해 바퀴벌레를 박멸했으나, 바로 옆 E식당에서 넘어오는 벌레들로 몸살을 앓았다. E식당은 평소 위생관리를 엉망으로 하다가 한 달에 한 번 훈연제를 피워 해충을 잡았다. 이때 살아남은 바퀴벌레들이 깨끗한 D식당으로 긴급피난을 온 것. D식당 주인은 E식당 주인과 다툰 끝에 두 식당 모두 방제서비스를 받는 쪽으로 석달 만에 합의를 봤다.

6가구가 모여 사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한 빌라에선 지난달 긴급 입주민 회의가 열렸다. 애집개미(일명 ‘불개미’)가 엄청나게 불어나 비상이 걸린 것. 식탁 위에 오징어를 올려 놓으면 30분 만에 개미들로 오징어가 뒤덮일 정도였다. 대책 회의에선, 토착적 믿음의 일환으로 출입문 위에 북어를 매달아 놓은 한 가구가 ‘주범’으로 지목됐다. 결국 주민들의 기세에 북어가 제거됐다.

●해충의 정체

인간과 함께 사는 바퀴는 독일바퀴, 미국바퀴, 일본바퀴 등이 있으나 90%가량이 독일바퀴다. 바퀴는 몸이 눌리는 것을 좋아하는(향촉성·向觸性) 감성적 습성을 지녀 밥솥 밑처럼 좁은 틈을 좋아한다.

임신한 암컷 바퀴 한 마리가 집에 들어오면 산술적으로는 3개월에 800마리, 1년에 10만마리까지 늘어날 수 있다. 1초에 28㎝를 달려갈 수 있는 속도(성인 신장으로 환산해 계산할 경우 시속 150㎞)라 손으로 때려잡는 것도 쉽지 않다. 철저한 야행성. 따라서 대낮에 집안에서 바퀴를 발견했다고 하면, 총 개체수는 상상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면 된다. 바퀴벌레가 나다니지 못하도록 밤새 불을 켜놓는 가정도 있는데, 바퀴는 빛의 유무가 아닌 낮밤의 생체리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큰 효과는 없다.

바퀴는 뱃속에 흰 영양물질을 갖고 있어 물만 먹고도 20일 이상을 산다. 미로 탈출을 바퀴에게 반복시키면 탈출에 걸리는 시간이 점차로 줄어든다는 실험 보고도 있다. 곡류, 야채, 과일, 어육은 물론 비닐, 머리카락, 피부 각질 등을 닥치는 대로 먹는다. 소화가 안된 것을 토해내는데, 싱크대 내부에 누런 기름때가 주욱 낀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바퀴의 토사물이다. 따라서 새 집을 구할 때는 싱크대 내부를 유심히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집에 사는 개미는 이른바 ‘불개미’로 불리는 애집개미가 일반적이다. 애집개미는 한 집에 여왕개미가 10마리 이상 되고, 여왕개미 마리당 최소 400마리의 일개미를 데리고 있다. 따라서 개미를 한 마리 발견했다고 하면 최소 4000마리가 살고 있는 셈이다. 잡아도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은, 밖으로 돌아다니는 개미는 전체의 10%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살충제를 서식처에 뿌리면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여왕개미를 죽일 수는 없다. 여왕개미는 일개미가 시식해서 문제가 없는 먹이만 먹을 정도로 주도면밀하다.

●해충을 없애려면

은행잎에는 벌레가 싫어하는 물질이 있는 것에 착안, 일부 가정에서는 집안 구석구석 은행잎을 놓는 민간요법을 쓴다. 붕산을 깔아놓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먹은 해충은 탈수증으로 죽는다. 바퀴와 개미는 △물 △따뜻한 온도 △음식물 등 ‘3박자’가 맞는 곳에 산다. 따라서 △쓰레기 봉투는 반드시 잠그고 △설거지는 바로하며(피곤한 경우는 물에 담가놓고 세제라도 풀어놓아야 한다) △음식물은 냉장고에 넣고 △타일의 깨진 부분 또는 걸레받이와 장판 사이 등 틈새를 메워주고 △한겨울에도 철저히 환기해 실내온도를 가끔씩 내리는 것이 해충을 줄이거나 방지하는데 효과적이다.

해충방제업체에서는 바퀴벌레와 개미를 근원적으로 없애기 위해 연쇄살충 효과가 있는 먹이약제를 쓰는 경우가 많다. ㈜세스코(CESCO) 기술연구소 전지환 신약개발팀장은 “먹이약제는 먹자마자 쓰러지는 맹독(毒) 성분이 아니라, 에너지원(ATP)의 생성을 막는 성분”이라고 설명했다. 천천히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먹이약제 성분이 작용해야 동료(개미의 경우 여왕개미)와 충분히 나눠먹는다. 먹은 후 24∼48시간에 서서히 힘이 빠지며 눈앞이 어른거리다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는다. 안락사인 셈이다.

sjda@donga.com

A씨의 바퀴벌레 관찰기록

연말연시

장소

벌레크기

벌레수

비고

2001.12.04.07:30

큰방 화장실 변기

11㎜

1마리

물에 빠져 움직이고 있음

12.11.09:00

큰방 화장실 바닥

8

1

더듬이만 움직이고 있음

12.30.20:30

9, 11

2

2002.01.01.08:30

큰방 서쪽벽

8

1

기어 올라가고 있음

01.26.08:00

큰방 침대 밑

11

3

침대 밑에서 도망

02.17.08:00

거실 큰 거울 밑

11

1

더듬이만 움직이고 있음

06.26.07:00

주방 냉장고 앞

15

1

죽은 바퀴(아파트 자체 방제)

07.14.11:00

큰방 화장실문 앞

16

1

더듬이만 움직이고 있음

07.20.07:30

베란다 출입문 근처

15

1

바닥에서 활발히 기어감

07.20.14:30

거실 출입문 입구

15

1

뒤집혀진 상태로 허우적거림

07.22.18:00

세탁기 쪽 출입문 밑

13

1

천천히 기어가고 있음

07.27.05:40

주방 싱크대 위

11

1

물 위에서 허우적거림

07.29.16:00

주방 싱크대 위 북쪽 벽

12

1

빨리 기어가고 있음

08.01.06:30

큰방 화장실 바닥

11

1

욕조 틈새로 들어감

08.05.07:00

주방 싱크대 위 북쪽 벽

12

1

빨리 기어가고 있음

08.06.06:30

큰방 화장실 바닥

10

1

빨리 기어가고 있음

08.31.07:00

주방 가스레인지 방바닥

10

1

느린 동작(잡음)

09.03.10:00

세탁기 쪽 가스대 위

10

1

빠른 동작(잡음)

09.09.11:00

주방 가스레인지 좌측 밑

11

1

느린 동작(잡음)

09.11.21:00

주방 가스레인지 위 구석

6

2

빠른 동작(잡음)

09.15.20:00

주방 가스레인지 좌측 밑

11

1

09.15.22:00

주방 냉장고 앞

11

1

09.15.22:50

거실 화장실 앞

11

1

09.17.21:20

주방 가스레인지 위 좌측

12

1

10.01.07:30

주방 가스레인지 좌측 밑

12

2

느린 동작(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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