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기자의 현장칼럼]월드컵 계기로 새로 나는 '서부 서울'

  • 입력 2002년 5월 2일 14시 59분



월드컵이 서울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1980년대 올림픽 경기를 전후해 서울 동부 지역이 큰 변화를 겪었다면 2000년대 들어서는 월드컵 경기를 계기로 서울 서부 지역이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이인성 교수는 “서울의 무게중심이 계속 서쪽으로 옮겨갈 것”으로 전망했다.

이제 서울을 말할 때 강남과 강북을 가르는 축 외에 동부와 서부를 나누는 또 다른 축을 거론해야 할 때가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월드컵 경기장이 들어선 데 이어 인근 선유도 난지도 등이 거대한 공원으로 변했다. 아름다운 조명을 갖춘 방화대교와 가양대교가 차례로 완공되면서 밤이 되면 암흑천지이던 성산대교와 행주대교 사이 난지도 앞길과 한강도 밝아졌다. 앞으로 난지도앞 한강둔치에 선착장이 생겨 유람선까지 오가면 이곳은 시민의 놀이공간으로 완전히 편입된다.

최근 문을 연 한강 위 선유도 공원은 낮보다 밤이 아름다운 공원이다. 선유도 공원에 가려면 한강시민공원 양화지구와 선유도를 잇는 한강 최초의 보행자 전용교량 ‘선유교’를 건너야 한다. ‘무지개 다리’로도 불리는 아치형의 이 다리는 밤에 조명을 받아야 그 이름에 걸맞은 모습이 드러난다. 다리를 설계한 프랑스 건축가 루디 리치오티는 교량 밑에서 특수설비로 안개를 피워 올리면서 빛을 비추는 조명을 계획했다. 이 계획은 비록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취소됐지만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등 4가지 빛을 쏘아 올린 지금의 조명만으로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선유도 공원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는 카페도 운치가 살아있는 곳이다. 선유도 공원은 이름 그대로 선유도라는 섬이 있던 곳으로 예로부터 서울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조망할 수 있는 지점으로 꼽혔다. 벽면 담쟁이 넝쿨 사이로 빛나는 현대식 카페 조명은 선유교, 한강유람선, 양화대교 등 어느 편에서 봐도 카페가 한강 한가운데 떠 있는 것처럼 신비롭게 만든다. 카페의 조명은 본래 계획에는 없었으나 강홍빈 서울시 행정1부시장의 지시로 막판에 설치됐다.

선유도 공원에는 또 멀리서 보면 둥근 성벽처럼 보이도록 수면과 공원이 맞닿은 선을 따라 하늘을 향해 일련의 조명기구가 설치된다. 서울시 야경과 관련해 학술용역을 맡고 있는 서울시립대 도시과학연구원 양승우 교수는 “월드컵이 시작되기 직전 이곳은 ‘빛의 섬’으로 태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거대한 난지도 공원도 월드컵 경기를 앞두고 1일 문을 열었다. 이곳은 쓰레기 매립이 중단된 93년 3월까지 15년 동안 쌓인 쓰레기 더미로 쓰레기 봉(峰)이 두 개나 생겼던 곳이다. 난지도 4개 공원 중 월드컵 경기장 앞 평화의 공원, 난지도 매립지를 에워싸고 도는 난지천 공원 등도 시민의 좋은 놀이공간이지만 이곳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은 역시 난지도 제2매립지(상류쪽) 위의 하늘공원이다.

공원 관계자들은 하늘공원의 컨셉트를 ‘황량함’으로 정의한다. 계단을 걸어올라 높이 약 100m의 하늘공원에 올라서면 이국적인 광활한 초지가 펼쳐진다. 그늘을 제공할 만한 나무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풀도 듬성듬성 자라고 있을 뿐인 황량한 초지다. 여기서 우리가 늘 보아온 공원의 포근한 쉼터 같은 걸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공원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은 엄연한 쓰레기 매립지다. 쓰레기 더미 위에 비닐을 씌우고 그 위에 흙을 60∼70㎝ 쌓아올린 곳이다. 여름에는 쓰레기 더미에서 뜨거운 열까지 발생해 덮고 있는 얇은 흙 층마저도 건조해지기 십상이다. 까치와 꿩이 살고 서울에서는 이제 보기 힘든 제비도 가끔 날아 다니지만 포유동물은 토끼조차 살고 있지 않다. 이곳은 아직 생태 실험이 진행 중이다. 앞으로도 얼마나 큰 나무들이 자랄 수 있을지는 공원 관계자들도 아직 알 수 없다.

현재로선 하늘공원의 가장 큰 매력은 공원 자체보다는 한강이 훤히 바라다보이는 전망에 있다. 서울 서부의 모습을 보기 위해 한강변에 지상으로부터 약 100m 높이에 있는 하늘공원처럼 좋은 곳은 없다. 하늘공원에서 바라보면 한강 상류쪽으로 여의도 너머 멀리 서초구 반포동, 잠원동까지 보이고 하류쪽으로는 가양대교 방화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내년 난지도 제1매립지(하류쪽)의 노을공원까지 완성되면 그곳에서는 서해의 낙조까지 볼 수 있다.

하늘공원에서 내려다보이는 방화대교와 가양대교는 특히 야경이 아름다운 다리다. ‘물에 비친 불빛이 더 멋있다’는 표현은 이곳에서 실감할 수 있다. 서울시는 ‘낮보다 밤이 아름다운 서울’을 만들기 위해 청담 방화 가양 등 최근 신설된 다리에 반드시 야간 조명시설을 함께 설치하도록 했다.

방화대교의 조명은 네덜란드 필립스사의 세계적 조명 디자이너 라이니어 헨드릭스가 설계했다. 파리 에펠탑의 실루엣 조명처럼 방화대교의 아치형 트러스트 부분을 실루엣으로 보여주는 이 조명은 낮에는 짙은 오렌지색인 교량을 백색으로 순화시켜 고급스러운 컬러를 연출하고 있다. 헨드릭스씨는 인천국제공항을 빠져나온 방문객이 처음 만나는 다리인 바다 위 영종대교의 조명도 맡았던 사람이다.

가양대교의 조명은 프랑스 건축가 이브 트로셀이 컨셉트를 제공했다. 그는 ‘여성적인 날씬함’이 느껴지는 조명을 강조했다. 교량의 색깔은 향나무 껍질을 벗기면 나타나는 향색인데 조명은 컬러필터를 사용해 한편으로는 노랗게, 또 한편으로는 붉게 보이는 미묘한 효과를 연출했다.

서울 서부의 이런 변화는 어쩌면 앞으로 있을 변화에 비하면 예고편에 불과한지 모른다. 월드컵 경기장 주변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면서 이미 계획이 발표된 영상산업 중심의 디지털미디어시티(DMC)와 상암 주거단지 조성은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다가왔다. 현재 진행중인 수색역과 문산역 간의 경의선 복선화, 논란을 거듭하고 있는 경인운하 건설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을 곳도 이곳이다. 상암 지구를 지나게 될 인천국제공항철도, 내부순환로와 연결되는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 제2 성산대교 건설 등의 계획은 이곳을 새로운 교통중심지로 만들 것이다.

난지도 앞 강 건너 강서구 일대에는 지하철 9호선이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시가 후대를 위해 개발을 보류한 서울 최후의 대규모 개발가능지역 마곡지구도 이곳이다. 인천국제공항을 동북아의 교통, 무역의 허브로 만들어 수도권을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지로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계획은 이미 시 차원을 넘어 국가 차원의 중점 사업이다. 이 사업이 인천국제공항의 배후도시로서의 김포매립지 개발과 서울 서부지역 개발을 연계시킬 것은 분명하다.

부동산114 이상영 사장은 “월드컵은 중장기적으로 새로운 서울 서부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며 “올림픽을 전후해 올림픽 스타디움이 지어지고 올림픽 공원이 개장되고 선수촌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잠실을 중심으로 강동 일대가 크게 변모하고 그 변화가 서울 동부 지역 전체에 파급효과를 미친 것과 비슷한 양상을 띌 것”으로 전망했다.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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