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남자 선배가 언젠가 툭 던지듯이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넌 도대체 언제 그 투명막을거둘래? 넌 모르지? 너하고 세상 사이에 투명한 막이 한겹 둘러쳐져 있다는 걸.” 그때 선배는 농담으로 웃으면서 “내가 찢어줄까?”했었다. 그 말에 화를 내야 할 것 같아 “무슨 상관이에요!”하고 돌아섰지만 그때도 마음이 참 쓸쓸했었다.
완벽주의에다 고지식한 성격 탓에 그녀는 쉽게 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했다. 그녀의 외모나 능력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언제나 일정한 거리 이상은 다가오지 못했다.
“아마 그 선배 말처럼 제 편에서 투명한 막을 두르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의도적으로 그런 적은 없어요. 그냥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걸요. 어쩌면 상처받는 게 두렵기때문일 테죠.”
그녀는 ‘어쩌면’이라고 모호한 표현을 썼지만, 사실은 인간관계에서 상처입는 것에 대해 아주 강렬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녀의 예에서 보듯이, 상처입는 것이 두려워 아예 깊이있는 인간관계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타고난 성격과 성장과정에서의 정서적 경험이 합쳐져서 그런 결과를 낳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인간관계는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또한 상처를 치유해 주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상처입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일정한 방어벽 안에 자신을 가두기만 한다면 치유 역시 불가능하다.
인간관계를 통해 서로의 관심을 주고받는 것은 정서적 생활의 기본이다. 사실 그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내 편에서 먼저 관심을 기울이고 먼저 손 내밀고 먼저 마음을 열기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어쩌다 상대방이 먼저 그렇게 해주면 자신도 모르게 방어벽을 거두는 게 사람 심리이다. 따뜻하고 깊이있는 인간관계를 원한다면, 결국 내 편에서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하는 것이다.그 속에 치유의 비결도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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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순 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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