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네트워크]SBS TV제작본부장 이·남·기 - 방송가 ‘인간성119’

  • 입력 2002년 1월 3일 16시 11분


《이 본부장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요즘 여의도 방송가 사람들이 일컬어 ‘이남기가 사는 법’이라고 말하는 그 무엇….》

“저 의논할 일이 있는데…”라고 전화하면 패티김 이미자 자니윤 이주일 조영남 조용필 주병진 서세원 이홍렬씨가 “무슨 일이세요?”라고 걱정하며 달려와 줄 수 있는 사람. 대통령도 추기경도 아니다. 이남기 SBS 제작본부장(53) 얘기다.

이 본부장의 인간관계 노하우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요즘 여의도 방송가 사람들이 일컬어 ‘이남기가 사는 법’이라고 말하는 무엇….

▼진심 제일주의 인간관계

그는 스타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스타들이 의논 상대로 부르는 사람이다. 지금은 병상에 있는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국회의원을 그만두던 날 “나 방송 다시 하고 싶다”고 전화한 상대가 그였고, 길옥윤씨가 암선고를 받은 뒤 “내 마지막 쇼를 만들어 줄 사람은 당신뿐이야”라고 손을 부여잡은 사람도 그였다. 패티김씨도 “TBC의 ‘쇼쇼쇼’ 시절부터 그를 참 귀여워했다. 이 본부장의 한결같은 성실함이 좋다”고 말한다.

이 본부장이 ‘녹화용 카메라 줄을 끌고 다니던’ 조연출자 시절부터 그를 지켜보아온 조영남씨는 “대한민국의 성격 까다로운 톱스타들을 다 모실 수 있는 사람”이라면서 “패티김 이미자 자니윤 이런 선배들을 대하는 걸 보면 꼭 부모한테 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74년 TBC 입사 동기로 “흠을 찾지 못하는 유일한 인간이 이남기”라고 말하는 신완수 SBS제작위원은 “사람에게 진실한 것, 그게 ‘이남기가 사는 법’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회사 경영진과 골프하다가 중간에 담이 결렸는데, 이 친구가 18홀이 끝날 때까지 쫓아다니며 등을 두드려주고 사람들 몰래 나무 뒤로 끌고가 파스를 붙여주더군요. 가식으로라도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못합니다.”

▼앞으로 밑지고 뒤로 남는다

그럼에도 이 본부장은 현실에서 손해보는 일 없이 승승장구해 왔다. TBC KBS SBS를 거치며 ‘쇼쇼쇼’ ‘백분쇼’ ‘자니윤쇼’ ‘오박사네 사람들’ ‘이주일의 투나잇쇼’ 등을 만들었다. ‘딴따라’ PD출신으로는 국내 방송사상 최초로 SBS 보도본부장(1999∼2001)을 지냈다. 주변에서 정작 경이로워 하는 것은 그의 출세속도가 아니라 그러고도 ‘적’이 없다는 것이다.

“톱스타의 매니저를 하다 보면 방송스케줄 잡아놓고도 약속을 저버리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어느 PD든 처음 한번은 참아주지만 두 번째만 되면 험한 소리가 나오죠. 예외가 이 본부장입니다. 욕을 안 하니 더 마음의 빚이 쌓이고, 미안해서라도 다음에는 최우선 순위로 두게 됩니다. 그게 그이가 자기 사람을 만드는 방법입니다.”(윤창중 예스컴 사장·전 이선희, 현 패티김 매니저)

이남기의 ‘인간 네트워크’는 히트 프로그램의 산실이다. 그는 사람과 사람의 좋은 만남이 성공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프로그램을 통해 증명했다.

자니윤과 조영남을 만나게 해 국내 TV 토크쇼의 신기원을 연 ‘자니윤쇼’를 만들었고 탤런트 오지명을 후배 코미디PD 주병대씨와 만나게 해 ‘오박사네 사람들’이라는 시트콤 장르를 개척했다. 헤어졌던 사람도 그를 다리 삼아 만났다. 휠체어를 탄 투병 말기의 길옥윤씨가 패티김씨와 무대에서 만나 아름답게 퇴장했던 ‘길옥윤의 이별콘서트’도 그의 기획이었다.

▼주변을 빛내서 나를 드러낸다

이 본부장은 아무나 만나면 “형님, 아우” 하는 마당발 스타일의 ‘덕장’이 아니다. 치밀한 분석력, 현장 파악력이 돋보이는 ‘지장(智將)’으로 꼽힌다.

그러나 다른 지장들과 큰 차이가 있다. 그 앞에서는 똑똑하지 않은 사람도 주눅들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이선배와 있으면 아이디어 없는 사람도 뭔가 잘 될 것 같은 자신감을 갖게”(SBS PD) 만든다.

“연예계의 천재들을 거치면서 배운 게 있습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천재 아닌 사람은 천재가 보는 걸 못 봅니다. 그럼 나머지는 쓸모없느냐? 천만에요. 발상은 똑똑한 20%에서 나와도 나머지 80%의 도움없이는 똑똑한 사람들의 생각이 실현되지 않습니다. 나보다 똑똑한 ‘선수’를 만났을 때는 그를 보좌하고, 덜 똑똑한 사람을 만나면 가진 만큼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이끌어주면 됩니다. 누구 하나 버릴 사람이 있습니까?”(이 본부장)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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