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김중혁 씨, 등단 6년 만에 첫 소설집 ‘펭귄뉴스’ 펴내

  • 입력 2006년 3월 16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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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 씨는 “소설을 통해 우리 눈앞에 늘 존재하지만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사물들의 의미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김중혁 씨는 “소설을 통해 우리 눈앞에 늘 존재하지만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사물들의 의미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김중혁(35) 씨는 ‘배스킨 라빈스’나 ‘스타벅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빛깔이 예쁜 아이스크림’이나 ‘맛이 강하면서도 대중적인 커피’라고 한다. “그런 이름(특정 상호)을 쓰면 기업 이미지, 현대의 라이프스타일 같은 게 한꺼번에 끌려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가 전달하고 싶은 것은 오로지 순수한 맛뿐이다. 올해로 등단한 지 6년째인 그가 첫 소설집 ‘펭귄뉴스’(문학과지성사)를 냈다. 그는 “상상력이 작동하는 방식이 한국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암시하고 있다”(평론가 우찬제)는 평을 받으면서 끈기 있게, 서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왔다. 그의 소설은 기성 흐름과 많이 구별돼 ‘21세기 신종 마니아 코드’라는 말도 듣는다. 14일 만난 김 씨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감정을 묘사하는 건 자신이 없더라고요. 제가 매혹된 것은 순수한 사물의 세계였어요. 컵, 종이, 열쇠, 연필 같은 것들은 보통 소설의 중심이 아니라 배경이 되잖아요. 그런 사물들을 앞세워서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그의 말처럼, 많은 작가가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을 섬세하게 그려낼 때 김 씨는 타자기, 라디오, 자전거, 지도 같은 것들을 소설에 등장시킨다. 물결치듯 몰려오는 새로운 것들에 가려 눈에 잘 띄지 않는, 낡고 잊혀지거나 중요도가 떨어져 가는 물건들이지만 그는 이것들을 하나하나 불러내 새로운 의미를 매긴다.

“사회적 맥락에서 보면 버려진 물건들이잖아요. 자전거는 이제 중요한 탈것이 아니고, 요즘 타자기 쓰는 사람 거의 없을 테고. 그런데 저는 이런 것들에 마음이 가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사물의 의미가 생겨나고, 그걸 소설로 옮기고….”


일러스트 제공 문학과지성사


놀랍게도 이런 ‘새롭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에서 새롭게 읽힌다. 표제작 ‘펭귄뉴스’는 ‘라디오’의 재발견이다. 속보를 쏟아내는 TV를 보고도 무료해 하던 주인공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통해 ‘관습에대한 저항’이 어떤 떨림을 주는지 깨닫고, 문화 개성(소설에서는 ‘비트’라는 단어로 표현된다)을 지키려는 비밀 결사단체 ‘펭귄뉴스’에 가입한다. 라디오라는 사물이 이렇게 한 사람에게 열정과 의식, 실천 의지를 준 것이다.

‘회색 괴물’에서는 탁탁탁 하고 타자기의 글쇠가 울리는 경쾌한 소리에서 활자에 대한 열정을 찾아내고, ‘바나나 주식회사’에서는 한쪽 방향으로밖에 갈 수 없는 자전거에서 ‘전진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비애’를 발견한다.

김 씨는 10대 때부터 친구들과 문예지를 돌려보고 습작을 했으며 수많은 문예지에 투고해온 문학 키드다. 젊은 작가에게 문학의 역할을 묻자 그는 단편 ‘무용지물 박물관’에 나오는 DJ 얘기를 꺼냈다. 이 DJ는 에펠탑, 잠수함, 보잉707기 같은 것들을 말로 스케치해 시각장애인들에게 들려주는 사람이다.

“작가도 그렇지 않을까 해요. 보이지 않는 것,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사람.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주는 사람.”

많은 사람이 숨차게 변화하는 신기술을 좇아갈 때 그냥 지나쳤던 사물의 의미를 다시 찾아내 주는 사람, 김중혁 씨의 말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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