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기자의 문학뜨락]詩 해설서에 詩가 사라진 까닭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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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 시인의 새 산문집 ‘시의 정거장’은 여러 시인들의 시 작품에 대한 해설서다.

시 해설서라면, 우리가 지면에서 자주 만나는 형식을 떠올리기 쉽다. 시를 인용하고 거기에 대한 설명을 붙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시가 빠져 있고 오로지 해설만 실렸다. ‘철썩이는 욕망을 접으면 호수의 노래를 들을 수 있으리라. 그것은 소리로 올까, 형상으로 올까. 안개는 물의 메아리다. 물은 밤새 몸을 바꾸어 노래처럼 이동한다.’ 이 글은 마종기 시인의 시 ‘메아리’에 대한 해설의 일부다. 시 ‘메아리’는 없고 시가 실린 시집 제목만 밝혔다.

이 독특한 형식엔 뒷얘기가 있다. 시를 인용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한’ 것이다. 저작권료 때문이다. 한 편의 시를 인용하기 위해선 시인에게 6만 원, 시집을 출간한 출판사에 3만 원, 모두 9만 원의 저작권료를 지급해야 한다. 시 50편을 인용하려면 450만 원, 전자책을 함께 낼 경우 비용이 2배로 들어 900만 원이 된다. 출판계에 따르면 저작권료를 들인 시 해설서가 수익을 거두려면 6000부 이상 팔려야 한다. 물론 시 해설서가 그 정도 팔리긴 쉽지 않다. 한때는 시집 베스트셀러 10위 중 7, 8권이 이런 시 해설서로 채워지기도 했지만, 요즘 시 해설서의 출간이 손에 꼽을 정도인 게 이런 이유에서다.

재수록 비용을 엄격하게 책정한 의도는 물론 시 저작권 보호를 위해서였다. 시인 A 씨는 이렇게 말한다. “시인이 시집 한 권을 만든다는 건 하나의 집을 짓는다는 거다. 창문 하나, 기둥 하나가 예쁘다고 그것만 떼다 본다면 집 전체를 이해하긴 어렵지 않을까. 물론 창문 하나에도 미학이 있겠지만….” 하지만 그는 인터넷 시대에 이런 우려가 과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많은 시가 저작권료 지급 없이 게재되기 때문이다. 무단으로 인용되지만 상업적 목적이 없어 제재가 없다.

같은 문인이라도 시인들은 대개 소설가보다 순하고 셈도 밝지 않다는 게 정설이다. 저작권료가 정당하게 지급되는 게 시인들을 돕는 일이고 또 당연한 권리일 텐데, 이 때문에 좋은 시 해설서가 못 나올 수 있다니 아쉽기도 하다. 장석남 시인의 시 없는 시 해설을 읽다 보니 기자는 그 시가 어떤 건지 궁금해졌다. 출판사로선 고육지책이었을 이 형식이, 적어도 한 명의 독자에게는 마종기 시인의 시집을 들춰볼 생각이 들게 한 셈이다. 아마 적잖은 독자가 그럴 것 같다. 장석남 시인이 아름다운 산문으로 감상을 적은 시 ‘메아리’의 일부를 인용한다. 보도, 비평, 연구, 교육 목적의 저작물 인용은 재수록 비용을 내지 않는다.

‘(…)새벽 안개가 천천히 일어나/잠 깨라고 수면에서 흔들거린다./아, 안개가 일어나 춤을 춘다./사람 같은 형상으로 춤을 추면서/안개가 안개를 걷으며 웃는다./그래서 온 아침이 한꺼번에 일어난다./우리를 껴안는/눈부신 물의 메아리.’(마종기 시집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에서)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시#해설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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