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리처드 3세 役 안석환, “심연서 惡을 끌어내겠다”

  • 입력 2004년 10월 25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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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5일부터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되는 ‘꼽추, 리차드 3세’에서 주인공으로 분한 안석환. -사진제공 예술의전당
11월5일부터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되는 ‘꼽추, 리차드 3세’에서 주인공으로 분한 안석환. -사진제공 예술의전당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가장 강렬한 악인, 리처드 3세.

근 10년 만에 그가 한국무대에 다시 오른다.

11월5일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연극 ‘꼽추, 리차드 3세’. 1995년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후 이번이 두 번째 공연이다.

실존인물인 영국의 리처드 3세(1452∼1485년)는 작품 속에서 왼쪽 팔과 다리를 쓰지 못하는 꼽추로 나온다. 여기서 비롯된 열등감 때문에 권력에 더욱 집착하는 그는 왕권을 잡는 과정에서 형과 어린 조카, 아내까지 가볍게 살해하는 냉혹한 악인이다.

‘리처드 3세’ 역을 맡은 배우 안석환(45)을 24일 저녁 예술의 전당 연습실에서 만났다.

● 몸 반쪽으로 연기해야 하는 악인

2시간에 가까운 전막 리허설을 마친 그는 검정색 민소매 티셔츠로 갈아입고 나타났다.

그는 “땀 때문에 매일 셔츠를 세 벌씩 챙겨온다”고 했다. 두 벌의 셔츠가 든 비닐 봉투를 누르니 젖은 빨래 마냥 땀이 주르륵 짜여 나왔다. 오른팔에는 500원짜리 동전 서너 개만한 보랏빛 멍 자국이 선연했다. 오른쪽으로만 몸을 지탱해 균형을 잡으려다 보니 온통 상처투성이라고 했다.

극 중 내내 등을 웅크리고, 왼팔과 왼발을 한껏 뒤튼 채 하이에나처럼 날렵하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 그의 연기는 한눈에 봐도 중노동이다.

‘리처드 3세’는 한국 관객에게는 낯설지만 외국에서는 로렌스 올리비에나 앤서니 쇼어, 알 파치노 등 당대의 배우들이 이 역을 맡았을 만큼 배우라면 한번쯤 탐내는 캐릭터다.

연출가 한태숙씨는 “그동안 이 작품 공연이 꺼려져 온 중요한 이유가 리처드3세를 제대로 해낼 배우가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며 “집요하게 배역을 파고드는 안석환씨를 보며 ‘역시 주연 배우감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칭찬했다.

● 내 인생의 세 번째 캐릭터

“그 어떤 악한보다 더한 악역이죠. 제 목표는 ‘페이소스’에요. 작품을 보고 관객이 ‘저런 나쁜 놈은 죽여야 해’라고 느낀다면 전 실패한 겁니다. 관객들이 ‘저런 불쌍한 인간이 생겨나지 않도록 감싸줘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게 목표죠.”

안석환은 악인을 연기하면서도 인간 심연에 잠재된 불완전성을 끌어냄으로써 관객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런 ‘이중성’ 때문에 그는 “파우스트의 ‘메피스토’보다 힘든 역 같다”고 했다.

올해로 연극을 시작한 지 18년. 1997년과 98년 동아연극상을 거푸 수상했을 만큼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는 안석환은 자신이 맡았던 수많은 배역 중에서 잊혀지지 않는 두 개의 뚜렷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에스트라공, 그리고 ‘남자 충동’의 장정. 그는 “리처드 3세는 내 배우 인생에서 세 번째 캐릭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습실 불을 끄고 나올 때 그는 넥타이까지 맨 양복 차림이었다. 오전 11시부터 밤 10시까지 연습실에 있으면서도 그는 “배역의 느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정장 차림에, 비극적 느낌의 검은색 옷 위주로 입고 다닌다고 했다.

“영화나 TV는 그냥 몸을 ‘빌려주는’ 것 같은데 연극은 내가 내 몸뚱이를 가지고 뭔가를 만들어내는 쾌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연극을 계속하게 되나 봐요.”

11월 28일까지. 화∼금 오후 7시반, 토 오후 4시 7시반, 일 오후 3시. 2만∼4만원. 02-764-8760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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