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북스]‘새 한국형 경제운용시스템을 찾아서’

  • 입력 2005년 1월 14일 16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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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한국형 경제운용시스템을 찾아서/정문건·손민중 지음/120쪽·5000원·삼성경제연구소

‘99, 88’이란 덕담이 유행하고 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라는 뜻이다.

행복하게 장수하려면 건강과 함께 적당한 부(富)도 있어야 한다. 이 조건에 맞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더욱이 요즘 경제가 어려우니 앞으로 수십 년을 살아야 할 사람들은 걱정이 태산 같다. 중장년층 상당수는 어렵사리 자녀들을 대학까지 졸업시켰건만 백수로 빈둥거리는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쉰다.

한국 경제, 무엇이 잘못돼 활기를 잃었는가.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대한 해답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나라 경제 전체를 조감하는 시야가 넓은 것으로 정평이 난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연구본부장의 만만찮은 내공이 배어 있는 책이다. 노동시장 흐름을 살피는 데 일가견을 지닌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의 전문성도 담겨 있다.

한국 경제가 늘어진 스프링처럼 탄력을 잃은 원인 가운데 하나는 기업가정신이 쇠퇴했기 때문이라는 것.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대로 영미식 기업제도를 도입하면서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자의 권한은 줄고 책임은 늘었다. 사외이사가 경영에 관여함에 따라 투명성은 높아졌지만 이것저것 간섭하는 바람에 의사결정 속도가 늦어지는 단점도 드러났다. 기업가가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사라져 가고 있다.

흔히 기업과 금융은 경제라는 수레를 이끄는 두 바퀴라고 한다. 양자(兩者)가 조화를 이루며 잘 돌아가야 경제 흐름이 좋아진다. 한국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이들 두 바퀴의 회전 속도가 서로 달라 수레가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고 있다.

이제 한국 경제는 장기 불황을 걱정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금리를 아무리 내려도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유동성 함정’ 현상마저 보인다.

한국 경제를 살리는 방안으로 저자들은 먼저 한국형 기업제도를 확립해서 기업가정신을 북돋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귤을 북쪽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남귤북지(南橘北枳)’란 말처럼 영미식 기업제도를 한국에 그대로 도입하면 부작용이 크다는 것.

정부 기능도 중요하다. 국가 능력 배양과 미래 선도 산업을 창출하는 혁신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낡은 관치(官治) 행태는 버려야 한다. 이래야 정부와 시장이 조화를 이룬 한국형 자본주의가 제대로 정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에 윤기가 돌아 희망찬 목소리로 ‘99, 88’을 외치길 기대한다. 불황 탓에 ‘88, 99’(88세까지 구구하게 산다는 뜻) 신세가 되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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