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북스]세계화는 이익집단의 논리?

  • 입력 2000년 11월 3일 18시 39분


□'허울뿐인 세계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외 지음/ 213쪽/ 7000원

로마는 그들이 정복했던 지역을 로마화했다. 조직화를 중시하는 로마인에 맞게 도시와 병영을 정비했고, 규격에 맞는 도로도 만들었다. 500년 이상 유럽세계의 맹주였던 로마가 서구세계에 남긴 영향력은 긴 지배 시간만큼이나 컸다. 상당수 유럽 왕조의 문양인 독수리도 로마에서 따 온 것이고, 현대 법률의 근간인 만민법도 로마에서 시작됐을 정도다.

지금 세계 경제의 화두인 ‘세계화’도 수백년의 세월이 지나면 ‘로마화’만큼의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결론은 후세의 역사가가 내리겠지만 ‘허울뿐인 세계화’는 이 질문에 ‘No’라고 대답하고 있다.

현대의 세계화는 팽창의 본능을 갖고 있는 기업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자연히 작은 것, 지역적인 것은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했고,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몇가지 예를 보자. 1950년대 중반부터 10년간 200개에 달하는 미국의 석유회사가 사라졌다. 세계를 무대로 장사하기 위해 대형 기업이 합병해 버린 것이다.

미국에서 대규모 할인점 하나가 주변 상가 70%의 문을 닫게 만드는 위력을 발휘하는 것도 비슷한 예일 것이다. 농업도 예외는 아니다. 영국에서는 지금도 매월 100개 정도의 낙농농가가 사라지고 있다. 세계화를 기치로 내건 대형 기업농이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가 경제계의 핵심어로 자리잡음에 따라 사회 지원체계도 세계화를 보조하는 수단으로 변하고 말았다. 미국에서 교통체계의 혁신을 내걸고 진행됐던 전차에서 자동차로의 전환도 이면은 미국 메이저 자동차회사의 판매 전략이었고, 방송도 공익의 도구보다는 소비를 자극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이런 영역들을 규제하려는 시도는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다. 이는 기업들이 로비스트, 선거운동 기부금, 두뇌집단을 통해 그들을 규제해야 하는 정부조직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결국 세계화의 이면은 보다 많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이 숨어있고, 이런 목적이 거대화를 부추켰으며, 세계화와 거대화는 빈부 격차의 확대를 낳았다는 결론을 ‘허울뿐인 세계화’는 내리고 있다.

그럼 거대화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허울뿐인 세계화’는 이런 의문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대안을 찾는 것 자체가 세계화라는 이데올로기에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래도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표지어가 돋보이기 위해서는 작은 것, 지역적인 것들이 가질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이종우(대우증권 연구위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