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당신 침대 위에 국경선이… 연극 ‘디 아더 사이드’

  • 입력 2005년 3월 22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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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나이, 성별, 빈부, 종교 등 사회의 모든 ‘경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연극 ‘디 아더 사이드’. 사진 제공 미추
이념, 나이, 성별, 빈부, 종교 등 사회의 모든 ‘경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연극 ‘디 아더 사이드’. 사진 제공 미추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디 아더 사이드(The Other Side)’는 ‘죽음과 소녀’로 잘 알려진 칠레 출신의 세계적인 극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최신작이다.

국내에서는 초연이지만 연출을 맡은 손진책 씨가 지난해 일본 신국립극장에서 ‘세계 초연’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배경은 20년째 전쟁 중인 가상의 나라 ‘콘스탄자’와 ‘토미스’의 국경 지대. 한 노부부는 이곳에서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해 주는 일을 하면서 15년 전 집을 나간 아들을 기다린다.

어느 날 휴전이 되고 국경이 노부부의 집안을 관통하게 된다. 노부부의 침대 한가운데에 국경선을 그은 젊은 국경경비대원(정호붕)은 콘스탄자 출신의 아내(김성녀)와 토미스 국적의 남편(권성덕)마저 양쪽으로 떼어놓는다. 이에 따라 노부부는 집에서 화장실을 갈 때조차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펼쳐진다.

무대 정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침대는 작품의 주제를 가장 함축적으로 드러내 주는 장치다.

가장 내밀하고 평화로운 안식처여야 할 침대가 넘어서는 안 될 장벽이 되고, 침대 위를 국경경비대원이 군홧발로 밟고 다니는 모습을 통해서 ‘세상 모든 것을 경계 지으려는 이분법적 사고의 경직성과 폭력성’이라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와 함께 국경경비대원과 그를 집나간 아들이라고 믿는 아내는 극에 새로운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가장 공들여 연출된 장면은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마지막 신. 국경경비대원의 시체를 안은 노부부 뒤로 수많은 무덤과 비석들이 포성과 함께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며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원작에도 없는 이 장면은 일본 초연 때도 ‘명장면’으로 꼽혔다.

그러나 일본 공연 때와 달리 대극장으로 무대를 옮긴 탓에 작품의 밀도는 떨어진다. 마지막 장면도 소극장이었다면 객석에서 느끼는 감동이 더 컸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세 배우들이 빚어내는 연기의 앙상블을 느끼기에도 공간은 너무 컸다.

대학로에서 모처럼 만날 수 있는 무게 있는 작품.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경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4월 3일까지. 2만∼3만 원. 02-747-5161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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