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42만2000여 종 식물 이름엔 인류역사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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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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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천년 식물 탐구의 역사/애너 파보르드 지음·구계원 옮김/704쪽·3만8000원·글항아리

‘식물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그리스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기원전 372년경∼기원전 287년)가 식물을 연구할 당시만 해도 그가 이름을 붙인 식물 종류는 500여 개에 머물렀다. 현재 학계에선 42만2000여 종의 식물이 파악됐다. 이 책은 2000년 넘게 이어진 식물학자들의 노력과 그로 인해 ‘이름을 갖게 된’ 식물들의 역사를 700쪽 넘는 분량에 담았다.

기원전 사람들은 주로 식물을 약초나 음식의 개념으로 바라봤다. 테오프라스토스는 ‘식물이 인간에게 어떤 효용성이 있나’를 넘어 처음으로 ‘식물 사이에 어떠한 연관성이 있나’란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식물을 성장 습관, 줄기와 잎, 열매와 뿌리 등 다양한 지표로 구분하며 식물학의 기초를 닦았다. 그의 연구에는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도 큰 영향을 끼쳤다. “식물과 동물의 지식도 형이상학이나 천문학 지식만큼 중요하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평소 역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테오프라스토스가 토대를 닦은 식물학은 당시 탐미주의적이던 아테네인들에게 외면당했고, 그는 1000년이 넘은 뒤에야 선구적 자연과학자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출판 기술의 발전이 불러온 식물학 부흥 역사도 이 책은 짚는다. 두루마리 형태의 파피루스를 대신해 서기 100년경 파피루스 종이들을 묶은 현재 형태의 책이 나오면서 식물도감의 제작이 용이해졌다. 중세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보급되면서 식물학은 한층 보급에 탄력을 받는다. 하지만 저작권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해적판 식물도감’이 활개를 치면서 오류가 많은 식물도감들이 유통되는 폐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화가들도 식물학 발전에 역할이 컸다. 사진 기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책에 담기는 식물들의 시각적 정확성은 화가가 식물의 모습을 얼마나 생생하게 그려주느냐에 달려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촛불에서 나온 검댕을 잎에 칠한 다음 종이에 대고 눌러 잎사귀를 지탱하고 있는 잎맥과 골을 정교하게 표현했다. 독일의 화가 뒤러는 꽃이나 잎이 솟아나는 방식의 차이들을 면밀히 화폭에 담아 식물학 발전에 기여했다.

식물을 알파벳순으로 처음 배열한 고대 그리스 의학자 갈레노스, 영국 성직자이자 식물학 연구자인 윌리엄 터너, 오늘날 사용하는 생물 분류법인 이명법(二名法)을 고안한 칼 폰 린네 등의 연구사도 정리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원예전문기자인 저자는 과학, 종교, 역사를 아우르며 2000년 넘게 이어진 식물학의 흐름을 되짚는다. 고대와 중세 식물도감에 실린 오래된 식물 그림들을 살펴보는 즐거움도 크다. 방대하고도 세세한 설명은 전공자에게는 반갑겠지만 일반인 대상의 ‘식물학 입문서’로는 지나치게 전문적인 느낌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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