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 어떡하죠?]구본용/사춘기 자녀에겐 친구처럼…

  • 입력 1999년 7월 11일 18시 27분


『누군가 나쁜 사람이 와서 나를 마음대로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우리 엄마가 어떻게 나올까요. 막 되는대로 살고 싶어요…. 저는 그렇게 할 용기도 없는 바보인가 봐요.』

『제가 공부를 왜 안하는지 아세요. 공부 잘해서 성적이 잘 나와봐요. 엄마는 자식 잘 키운 덕이라고 자랑할 거예요. 엄마에게 그런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아요.』

어느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상담실에서 울면서 이렇게 부모에 대한 감정을 쏟아놓았다. 이 학생은 본래 공부도 잘하고 부모의 말을 잘듣는 ‘범생이’였다. 범생이는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 모범생을 놀릴 때 쓰는 은어다.

부모는 초등학교 중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이 딸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많은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딸의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주변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면서 부모와 자식간의 골이 점점 깊어졌다.

어떤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자랄만큼 자란 것을 깨닫지 못한다. 심지어 중학교 고학년 자녀까지도 품안에 데리고 있으려 하는 부모들도 있다. 이미 중학생이 된 자녀에게 모든 것의 옳고 그름을 대신 판단해 주려드는 것이다. 그러나 머리가 굵어진 아이는 부모의 당부나 기대와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한다. 부모들은 순종하지 않는 자녀들을 보면서 더욱 불안해 하며 잔소리가 늘어난다.

이 여학생은 부모와 갈등이 심해지면서 점차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성적은 떨어졌고 부모는 자주 화를 냈다.

“너는 아직 어리다. 내가 다 너 잘돼라고 이러지 못돼라고 이러느냐?” 이런 식의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 여학생은 귀를 막아버렸다.

문제에 빠진 학생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부모들이 몸과 마음이 성장한 자녀를 어린아이로만 다루려다가 오히려 자녀를 잘못된 길로 빠지게 하는 사례를 자주 만나게 된다. 부모는 자녀들이 유치원에 다니기 전까지는 보육자로서 역할을 한다. 이때는 아이들을 잘 먹이고 안전하게 키우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부모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떤 행동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를 가르쳐 주는 교사 역할을 한다.

그러나 사춘기에 다다른 중학생 자녀들은 부모가 보육자나 교사의 역할을 하려들면 잔소리로 생각하고 반항을 하기 쉽다. 이렇게 되면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가 나빠지고 대화가 단절된다.

청소년기의 자녀들에게는 함께 의논하고 함께 고민하는, 마치 카운슬러와 같은 부모가 필요하다. 카운슬러라는 말이 너무 전문적이라고 들리면 열심히 들어주고 함께 의견을 나누는 친구같은부모가 되겠다고 생각하라.

자녀가 성장하면서 부모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 이것이 자녀를 잘 키우는 지혜다.

구본용<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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