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상사에 대한 분노는 한 다리 건너 전하라”

  • 입력 2009년 7월 4일 02시 52분


‘DNA 이중나선 구조’ 밝혀내 노벨상 탄 왓슨의 철저한 현실 중심 인생교훈 “학자가 되려면 동기들보다 교수와 친하게 지내라”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제임스 듀이 왓슨 지음·김명남 옮김/486쪽·2만5000원·이레

“고등학교 졸업 전에는 선생님이 가르치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해봤자 좋을 게 없다. 선생님이 좋아하는 내용을 착실하게 외워서 만점을 받는 편이 낫다.” “논문 지도교수는 젊은 사람으로 골라라. 나는 (지도교수의) 첫 (논문) 지도학생인 덕을 톡톡히 보았다. 교수의 관심을 다른 학생들과 나누지 않아도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학문하는 사람의 주된 동기는 돈이 아니라는 허튼소리를 할 때가 많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고용주가 당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연봉을 통해서 표현된다.”

노벨상 수상자 제임스 듀이 왓슨은 학계에서 ‘건방진 천재’로 불린다. 그는 25세 때인 1953년 ‘유전자(DNA)의 이중나선구조’를 처음으로 밝혀내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하버드대 교수를 지내고 2007년까지 40년 동안 뉴욕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를 이끌며 연구소를 세계적인 분자생물학 연구기관으로 만들었다. 1990년에는 미국 프랑스 일본 등 15개국이 함께 시작한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초대 책임자를 맡기도 했다.

그는 인간관계에서 ‘현실적인 필요성’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도움을 받을 선후배와 동료 학자에게는 깍듯했다. 하지만 자신이 능력을 인정하지 않거나 교류할 필요가 없는 학자에게는 학문적으로 가차 없이 비판했다. 예의상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은 할 줄 몰랐다. 하버드대에서 함께 근무한 ‘통섭’의 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그를 가리켜 “지금까지 만난 가장 불쾌한 인간”이라고 하기도 했다.

이렇듯 ‘건방진 천재’인 그는 자서전 같은 이 책에서 인생에 대해 상식이나 통념을 깨는 처세 방법을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때로는 독설 같아서 오히려 더 현실감을 주기도 한다. 제목인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라는 말은 종신교수가 된 뒤 참신한 연구를 하지 않는 고참 교수들과는 만나지 말라는 얘기다. 사회적 지위가 높아도 더는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배울 게 없어서다. 그는 뭐든 끝까지 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말은 반만 맞을 뿐이라고 말한다.

초등학교 때 수학 성적이 좋지 않았던 그는 어제 배운 공식이 떠오르지 않으면 끝까지 문제를 풀기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에게 물었다. 창피해도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다음 문제로 넘어가지 못하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었다. 시카고대에 제출한 자기소개서를 어머니가 꼼꼼하게 손본 일도 거리낌 없이 밝혔다. 어릴 때 익힌 또 하나의 교훈은 싸움에서 이길 가망이 없으면 도망치라는 것이다. 몸집이 작았던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같은 반 녀석들을 피해 다녔다. 주먹 쥐고 대항해봤자 돌아오는 건 코피뿐이란 사실을 깨닫자 ‘계집애’ 소리를 듣더라도 도망 다니는 길을 택했다.

대학시절 기회의 문을 넓히려면 교수들과 친해지라고 말한다. 그는 스스로도 사회성이 떨어졌다고 인정할 만큼 대학 때 친구가 거의 없었다. 그 대신 교수들과의 관계에는 힘을 쏟았다. 흥미를 가진 수업이 끝나면 교수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열정을 보였다. 동물행동학자 클라이드 앨리 교수는 이를 높이 평가해 학부생인 왓슨이 대학원생 모임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줬고 다른 학교 대학원에 원서를 낼 때 추천서도 써줬다. 그는 대학원 추천서를 잘 받으려면 미리미리 씨앗을 뿌려둬야 한다고 말한다.

학자들과의 정보교류도 마찬가지. 정보가 돌아다니는 집단에 들어가지 못해 새 소식을 듣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교성이 없는 왓슨은 학자들과의 교류에는 각별한 신경을 썼다. 실제로 노벨상을 받는 데 이런 교류가 도움이 됐다.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연구소 시절 그와 동료인 크릭이 DNA 구조를 풀어낸 데에는 당시 교류하던 런던 킹스칼리지의 모리스 윌킨스가 보여준 ‘DNA X선 촬영 사진’이 있었다. 노벨상 수상 직후 “윌킨스가 보여준 킹스칼리지의 자료를 왓슨과 크릭이 도용했다”는 논란이 일었을 만큼 DNA 구조를 해명하는 결정적인 자료였다.

그가 전하는 처세술은 철저하게 현실적이다. 대학원 구술시험에서 교수들의 계속되는 비판에 모멸감을 느끼더라도 참아야 재시험을 치르지 않으며, 지적 수준이 동등한 사람과 공동작업을 해야 성과를 낼 수 있고, 자기보다 윗사람에게 분노를 전하려거든 한 다리 건너 동료를 통해 전해야 극단적인 충돌을 피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왓슨은 자신의 처세술을 담은 이 책의 영국 출간(2007년 10월)을 계기로 한 인터뷰에서 흑인 차별 발언을 했다가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를 그만두고 은퇴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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