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탐욕의 부산물 「가짜문화재」

  • 입력 1998년 2월 26일 08시 38분


가짜 거북선 총통
가짜 거북선 총통
문화재와 가짜. 인간의 욕망이 존재하는 한 그 ‘악연’은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국보문화재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가짜사건은 거북선 별황자총통(別黃字銃筒)조작사건. 92년8월, 해군의 이충무공 해저유물발굴단은 남해 앞바다에서 거북선총통을 발굴해내는 개가를 올렸다. 세상이 떠들썩했고 3일만에 국보로 지정됐다. 4년이 채 지나지 않은 96년6월, 총통발굴은 조작으로 밝혀졌다. 진급에 눈이 먼 한 해군대령이 골동품상과 짜고 가짜를 만들어 바다에 빠뜨린 뒤 진짜인양 건져낸 것이다. 무기전문가의 정밀 감정도 없이 국보로 졸속 지정한 웃지못할 촌극이었다. 결과는 국보 지위 박탈. 가짜임이 밝혀져 국보에서 해제됐으나 아직도 간헐적으로 반론이 제기되는 경우는 경기 용문산 상원사종.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종으로 알려졌던 이 종이 국보에서 해제된 것은 1962년. ‘1908년 일본인이 진짜 상원사종을 구입, 한강을 통해 서울 남산의 일본사찰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로 옮기는 도중 일본에서 급조해온 가짜종과 바꿔치기하고 진짜는 일본으로 빼돌렸다’는 것이 당시 문화재위원회의 해제사유. 광복 이후엔 서울 조계사로 옮겨져 진짜 상원사종으로 행세해왔다는 결론이었다. 지금은 파주 보광사에 보관중. 그러나 한강에서의 바꿔치기를 본 사람이 있는지, 일본으로 넘어간 진짜는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곤 했다. 남천우 전서울대교수는 최근 “문제의 이 종이 7세기말 고대 중국양식에서 한국양식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우리 범종”이라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양이 일본양식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 가장 뜨거웠던 진위논쟁은 94년 신윤복의 속화첩 논란. 당시 일본에서 이 그림을 사들여온 고미술단체와 일부 미술사학자가 진짜라고 발표하면서 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국보로 지정되어야 할 판이었다. 곧바로 가짜 의문이 제기됐고 한동안 치열한 격론을 벌였다. 자세히 보면 신윤복 진품과 그 표현 기법이 전혀 다른데도 당시 구입자측은 일방적으로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논쟁을 끝냈다. 물론 엄연한 가짜였다. 문화재에 있어 가짜는 끊임없는 골칫거리다. 김정희의 글씨나 대원군의 난초는 절반이 가짜라고 할 정도.가짜 기법이 점점 고도화되면서 진위 판별도 만만치 않다. 최근 중국을 통해 들어오는 북한문화재도 큰 문제다. 이들의 상당수가 가짜라는 것은 이미 정설. ‘못된’ 한국인들과 손잡은 중국 조선족들이 지린(吉林)지역에 공장을 차려놓고 가짜를 찍어내 ‘북한산’이라고 속여먹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러나 가짜라고 해서 다 같은 가짜가 아닐 수도 있다. 조선시대엔 선대 대가급 화가들의 그림을 모방하는 것이 화가에게 중요한 습작과정의 하나였다. 그런데 제자가 모방한 그림이 스승의 원작보다 뛰어났다면 그것은 가짜인가 진짜인가. 〈이광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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