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자, 달아나라! 넓은 바깥 세계로!

  • 입력 2002년 7월 30일 17시 20분


자, 달아나라! 넓은 바깥 세계로!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대작 '파우스트'에 나오는 대사이다. 비극 제 1부의 '밤'에 있는 파우스트 박사의 대사 가운데 일부인데, 책상 앞에 앉아 그동안 자신이 이루어 놓은 학문적 성과가 덧없음을 느끼고는 혼미한 자신의 내면에 대해 스스로 질책하며 초조해하는 대목에서 나온다. 젊고 싱싱한 삶의 행복을 위해 '새로운 표적'을 정하고 매진하라는 뜻이 담겨있는 파우스트의 대사인 것이다.

지난 7월 21일부터 28일까지 노르웨이에선 19세 이하 유럽 선수권이 있었다. 지역예선을 거친 8개 팀이 출전해서 네 팀씩 두 조로 나뉘어, 각 조 2위끼리 3, 4위전을 치르고 각 조 1위들끼리 결승전을 치러 챔피언을 가리는 방식이었다. 그 대회에서 독일의 19세 이하 대표팀은, 결승에서 에스파냐에게 아깝게 0:1로 지면서 준우승에 머물렀다. 사실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비성인 대표팀과, 유망주 부족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는 독일 축구계는 아무래도 모순된다. 독일 축구라는 하나의 몸뚱이에 존재하는 이 양면의 얼굴을 살펴보면서, 혼미한(?) 독일 축구가 지향할 '새로운 표적'이 무엇인지 심사숙고 해보기로 하겠다.

레알 마드리드와 보루시아 묀셴글라드바흐에서 선수로 뛴 경험이 있는 울리히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19세 이하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독일 축구게에 희망을 불어넣었다. 1998년 이후로 줄곧 팀을 맡아오고 있는 슈틸리케 감독으로서는 선전도 졸전도 아닌 결과를 얻었다. 주로 83년생과 84년생들로 구성된 19세 이하 팀은 대부분 분데스리가에 적을 두고 있는 유망주들로 짜여져 있었다.

골키퍼는 이번에 1부 리가로 승격한 하노버 96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사온 유망주 다니엘 하스와 보쿰의 바스티안 괴리센이, 수비수는 헤르타 베를린의 조피안 카에트와 말릭 파티, 1860 뮌헨의 야네스 크로네, 그리고 레버쿠젠의 알렉산더 메이어였다.

미드필더는 바이에른 뮌헨의 필립 람과 피오트르 트로코프스키, 슈투트가르트의 마티아스 레만, 레버쿠젠의 이오아니스 마스마니디스, 프라이부르크의 자샤 리터, 아스날의 모리츠 폴츠, 그리고 리베로로서 촉망받는 유망주인 샬케 04의 벤야민 빙어터가 뽑혔었다.

공격수로는 샬케 04의 미케 한케, 도르트문트의 엠마누엘 크론티리스와 다비트 오돈코어, 첼시의 제바스티안 크나이슬, 그리고 한자 로스토크의 마르첼 쉬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노르웨이에서 열린 이번의 19세 이하 유럽선수권에 나가기 위해서 독일은, 작년 9월부터 시작된 지역예선에서 스웨덴과 터키와 같은 조가 되었다. 첫 경기였던 스웨덴과의 란츠크로나에서의 원정경기는 뜻밖의 4:0 대승을 거두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한케의 두 골과 크나이슬의 쐐기골로 손쉬운 승리를 거둔 독일은, 한 달 뒤 다크호스 터키를 상대로 두번째 원정경기를 가졌다.

만니사에서 벌어진 원정경기에서 독일은 성인 대표팀이 보여주는 특유의 끈끈함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후반 25분까지 0:2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불과 2분 만에 빙어터의 중거리슛과 쉬트의 극적인 동점골로 비긴 것이었다.

이렇게 자신감을 얻은 독일은, 11월에 뤼벡의 로뮐러 경기장에서 있었던 스웨덴과의 홈경기에서도 크나이슬의 두 골과 마스마니디스의 골로 3:1로 역전승하며 본선 진출에의 희망을 구체화했다.

그리고 슈바인푸르트의 빌리 작센 경기장에서 벌어진 터키와의 마지막 경기에서도, 한케의 동점골 뒤 트로코프스키가 터뜨린 종료 8분 전의 역전 결승골로 1차 예선을 통과했다.

그리고 만난 것은 폴란드. 19세 이하 대표팀은, 지난 4월에 귀터슬로의 하이데발트 경기장에서 열렸던 폴란드와의 1차전에서 0:0으로 비기며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한 달 뒤, 폴란드의 그다니아에서 치른 원정경기는 극적인 명승부전이었다. 트로코프스키와 교체되어 들어간 한케가 들어간지 5분 만에 동점골을 터뜨렸다. 그러나 빙어터를 주축으로 한 수비선이 흔들리며, 골키퍼 하스가 한 골을 다시 내주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폴란드가 올라갈 판이었다. 그 때, 우어리알이 종료 직전 천금같은 동점골을 터뜨리며 2:2로 비겼고, 독일은 천신만고 끝에 노르웨이에 갈 수 있었다.

독일은 본선에서 B조에 속했다. A조는 주최국 노르웨이와 슬로바키아, 에스파냐, 그리고 체코 공화국이 속하게 되었고, 독일은 잉글랜드, 벨기에, 아일랜드와 같은 조에 들어갔다. 7월 22일에 오슬로에서 19세 이하 대표팀은 잉글랜드를 상대로 첫 경기를 갖게 되었다.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아스날에서 뛰는 폴츠가 전반 4분에 먼저 한 골을 넣으며 독일이 앞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9분에 딘 애쉬턴의 동점골을 시작으로, 30분엔 제롬 토마스가 역전골을, 후반 23분엔 칼튼 콜이 쐐기골을 넣으며 승부를 결정짓는 듯했다. 그러나 독일의 끈끈함과 좀처럼 지지 않는 저력이 여기서도 발휘되었다. 골을 넣은 폴츠와 후반 31분에 교체되어 들어간 람이 종료 직전인 후반 45분에 골을 넣었고, 곧바로 잉글랜드의 킥오프된 공을 뺏은 한케가 다시 후반 45분에 동점골을 넣은 것이었다. 이 기적같은 무승부로 19세 이하 독일팀은 큰 자신감을 얻었고, 이 경기를 분수령으로 잉글랜드는 부진한 경기 끝에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하였다.

독일의 두번째 상대는 아일랜드였다. 이틀 뒤에 벌어진 이 경기는 싱겁게 끝났다. 리터와 트로코프스키, 그리고 한케가 연속골을 터뜨리며 3:0으로 난적 아일랜드를 일축한 것이었다. 그리고 만난 마지막 상대는 벨기에였다. 7월 26일에 열린 이 경기도 명승부전이었다. 벨기에의 반덴베르흐에게 전반 33분에 선제골을 내줬으나, 4분 뒤 폴츠가 동점골을 넣었고 후반 27분엔 오돈코어가 다시 역전골을 넣은 것이었다. 이로써 독일은 2승 1패로 조 1위로 결승에 진출하였고, 득실에서 뒤지는 아일랜드가 역시 2승 1패로 3, 4위전에 진출하였다.

결승전은 A조 1위로 올라온 강적 에스파냐와의 경기였다. 첫 경기 체코 공화국과 1:1로 비겼던 에스파냐는 개최국 노르웨이를 3:0으로 가볍게 이기고, 슬로바키아마저도 3:1로 꺾으며 조 1위로 결승에 올라온 것이었다. 7월 28일에 오슬로의 울레발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 결승전을 보기 위해, 1만 6천여 관중이 모여들었다.

역시 에스파냐는 강했다. 독일은 에스파냐의 파상공세를, 전 경기에 교체없이 출장한 하스가 여러차례 선방했지만 결국엔 후반 10분 토레스에게 내준 골을 만회하지 못하고 0:1로 석패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결승전에서 전술적 변형을 시도했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리베로 겸 스위퍼로 기용하던 빙어터를 왼쪽 날개로 기용하고, 종전의 쓰리백을 포백으로 바꿔 수비에 치중했으나 결국엔 에스파냐의 날카로운 공격에 시종일관 끌려다니다가 우승 문턱에서 좌절한 것이다. 실점 뒤에 슈틸리케는 수비수 크로네를 미드필더 람으로 바꾸고, 왼쪽 윙백인 폴츠를 오돈코어로, 그리고 마스마니디스를 쉬트로 교체했지만, 결국엔 흐트러진 조직력을 다잡을 수 없었다.

경기 뒤 슈틸리케 감독은 "근소한 과실에서 차이가 났다. 첫 골이 너무나 뼈아팠다. 하스는 칭찬할 만했다. 선수들이 잘해줬다"고 평하며 아쉬운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렇게 19세 이하 대표팀은 그들이 보여준 끈기와 저력을 뒤로 하고 독일로 돌아왔다. 게어하르트 마이어-포어펠더 독일축구협회장은 "우리는 스피드가 풍부한, 아주 좋은 마지막 경기를 봤다. 에스파냐는 문전에서 좋았다. 우리의 선수들은 아주 훌륭한 경기를 대회 내내 선보였다"면서 팀의 노고를 치하했다.

월드컵에서의 준우승에 이은 이번 대회에서의 준우승을, 확실히 독일 축구계에서는 반기는 분위기다. 딴은 침체기라고 불리는 독일이 성인 대표팀과 19세 이하 대표팀 경기에서도 좋은 성적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는 독일 축구에 스타가 없음이 결코 팀의 성적과는 무관한 것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한 것이었다. 물론 이번 대회에서 다니엘 하스와 미케 한케는 괄목할 만한 모습을 보였다. 하스는 여러차례 빛나는 선방을 보여주었고, 한케는 183cm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과 속도로 상대 수비수들을 제압하며 높은 골결정력을 보였다.

그러면서 샬케의 19세 이하 팀에 속해 있던 한케는, 단번에 성인 팀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얼마나 분데스리가에 출전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프란크 노이바르트 신임 감독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음은 물론이고, 2004년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엔 더욱더 성장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어디까지나 팀의 톱니바퀴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스타성과 마케팅의 현 축구판 특성상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 뿐이지, 독일의 실력과 끈기는 아직도 유효하다는 결과를 내리기에 충분한 대회였다. 성인팀에 이어 19세 이하 팀도 그것을 증명한 것이다.

물론 대진운도 좋았다. 강팀이라 평가되던, 3위에 그친 슬로바키아나 체코 공화국을 피한 것도 독일의 쉬운 결승진출에 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은, 독일의 성적이다. 독일은 어느 대회든 우승할 때에도 말이 많았다. 그것은 그들의 플레이 스타일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팬들이 보기에 독일식 축구는 너무도 답답하기 때문이다. 지난 월드컵 파라과이와의 16강전이 그 예이다. 후반 43분 노이필레의 '깨끗한' 단 한 골로 승부가 난 이 경기는, 사실 너무나 루즈했다. 그러나 결과는 독일이 이기며 8강에 올라갔다. 우리는 결과만을 기억한다.

54년 스위스 대회, 74년 서독 대회, 그리고 90년 이탈리아 대회 모두 독일은 속시원히 이기며 우승하지 못했다. 독일이 이기는 '장면'을 보지 않고, 독일의 '결과'만을 본 사람들만이 독일의 경기력을 비난하는 것이다. 독일은 예전의 언제라도 이랬고, 앞으로도 외국인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이럴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비판에 시달릴 것이다. 스타가 적고, 너무 재미없는 축구를 한다고. (사실 스타가 진짜 적긴 적다.) 하지만, 이것만은 우리가 염두해 두어야 한다. 독일이 독일식 축구를 하지 않았다면, 월드컵과 유럽 선수권에서 세차례씩 우승한 기록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세계 축구계에서 강호 하나가 없는, 별로 재미없는 경우의 수를 맞이해 덜 윤택한 축구판을 경험했을 것이다.

축구는 전 세계에 퍼진 스포츠이다. 따라서 각기 그 지역의 기후와 사람들의 습성에 맞게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유럽놈들이 우리 축구보고 '뛰기만 하는 축구'라고 하는 것이 웃기듯이, 우리도 독일 축구를 '루즈한 축구'라고 한다면 같은 오류를 범하는 것일 것이다. 스위퍼가 저 뒤에 짱박혀있고, 크로싱 위주의 속공만을 고집하고, 태클과 헤딩으로 경기를 풀어나간다고 해도 말이다. 두 번 싸워 두 번 다 진 우리나, 17번 싸워 10번 이긴 브라질이든 독일축구를 폄하할 자격은 없는 것이다. 독일 축구는 독일 축구다울 때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

잉글랜드에서도 뛰고 있는 이번 19세 이하의 유망주들이 보인다. 모쪼록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동료들도 다른 나라에서 많이 뛰며 축구를 많이 배워와서 독일 축구에 좀더 역동적인 면을 가미해줬으면 한다.

재미까지 있으면 더 좋겠지만, 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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