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실업 축구, 존재의 이유

  • 입력 2001년 11월 6일 10시 10분


2001 FA컵 8강이 가려진 지금, 아마추어팀으로는 유일하게 한국철도가 살아 남았다. 8강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프로 팀인 수원과 전남을 꺾었으며, 전북 현대를 상대로 4강 진출을 다투게 된다. 이번 FA컵에 참가한 실업 팀은 모두 5개 팀이며(상무 제외) 한국철도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은 모두 프로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한국철도의 선전은 FA컵을 보는 즐거움인 한편, 실업 축구에 대해 다시 한 번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프로 축구 팀을 향한 오기였을 수도 있고 실업 팀을 얕잡아 본 프로 팀의 나태함일 수도 있지만, 실업 팀도 그 나름의 전력과 존재의 이유를 가진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나라의 현실에서 실업 축구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각 실업 팀마다 심심찮게 프로 2군 출신의 선수들이 보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국철도가 16강에서 전남을 꺾을 때 승부차기에서 놀라운 방어력을 보여준 GK 한상수 선수는 부산 아이콘스에서 뛴 적이 있다. (당시 한상수는 페널티 킥 방어에 있어서는 주전 골키퍼 신범철(현 수원 삼성)을 능가하는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실업 최강이라 불리는 현대 미포조선의 주전 대다수는 울산 현대의 2군에서 활약하던 선수들이다. 기량 때문이든 다른 이유든 간에 프로에서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선수들에게 실업 팀은 하나의 차선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로 팀을 한 번 들여다 보자. 점점 신인 선수들의 나이는 어려지고 있으며 주전의 벽은 더욱 높아만 간다. 2군에서 1-2년 간 담금질을 한 후 1군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하는 선수는 고작 해야 한 해에 1-2명 수준이다. 1군 무대에 오르지 못한 선수는 또다시 2군에서 기회를 노려야 한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또 다른 후배 신인들이 입단을 하게 되며 팀은 적정 수준의 선수 풀을 보유해야 하므로 2-3년이 지난 후에도 자리를 잡지 못하면 팀을 떠나야 한다. 이제 한국의 프로 팀들도 25세가 넘는 2군 선수를 팀에 담아 두려 하지 않는 추세이다. 다른 팀을 찾아 볼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이들이 축구를 계속 할 수 있는 길은 실업 팀에 입단하거나 동호인 팀에서 뛰는 것 뿐이다. 아쉽게도 실업 팀의 숫자와 각 팀의 선수 보유수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프로에서 배출(?)하는 선수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실업 축구가 축구 선수에게 있어서 또 다른 무대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 주목하자.

이러한 실업 축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곳이 바로 프로 2부 리그다. 최고가 아닌 선수들에게도 축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무명의 어린 선수에게는 최고가 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한다. 또한 작은 소도시라도 자기들만의 프로 팀을 가질 수 있다. 한 시즌을 마친 후, 2부 리그의 1-2위 팀은 1부 리그로 승격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은 빼 놓을 수 없는 매력이 된다. 아울러 1부 리그 승격과 함께 중계권 수입이나 광고 수입이 대폭 늘어나고 몇몇 선수들의 이적을 통해서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

현재 우리의 실업 축구가 이와 같은 2부 리그로서의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우선은 프로 팀들에 비해서 재정 규모와 팀 규모 등에서 차이가 난다. 그로 인해 정상적인 전국 규모의 연중 리그를 운영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벅찬 상황이다. 또한 연고지 기반이 취약하고 프로 축구 자체의 시장이 열악하기 때문에 프로 2부 리그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설사 상위 팀이 1부 리그에 해당하는 K-리그에 참여를 한다 하더라도 외국처럼 막대한 스폰서를 확보하면서 1부 팀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할 수가 없다. 결국, 실업 팀은 잘되건 못되건 간에 실업으로 남을 수 밖에 없으며, 막대한 돈을 투자하기 전에는 절대 K-리그의 팀이 될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는 것이다. 또한 어린 선수가 실업 팀에서 성장한 후 프로 팀에 입단하는 양상의 선수 수급 체계도 없으니… 어디까지나 둘은 남남일 수 밖에 없다.

일본의 경우 J-리그 출범 초기에 JFL을 따로 운영하였으며, 여기에 참여하는 팀들은 우리의 실업 팀에 해당하는 팀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FL 팀들은 현재 일본 2부 리그인 J2 리그의 팀으로 재편되었으며, 시즌 성적에 따라 1부 리그로 승격될 경우에는 정상적인 1부 리그 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팀 체계와 연고지를 확보하고 있다. 비록 재정 규모나 팀 규모에서는 1부 리그 팀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지만 2부 리그의 팀들도 확실한 클럽 시스템과 유소년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저예산으로 독립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우리의 실업 팀과는 그 구조와 체계가 다르다는 말이다.

우리로서는 먼저 실업 팀의 수와 범위를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현재의 경제 상황과 축구 시장을 토대로 볼 때 기업이 주도하는 실업 축구를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서울시청이나 강릉시청과 같은 지역기반 팀들을 활성화 시킨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환경이 제공될 것이다. (이번 FA 컵에서 또 하나의 화제를 일으켰던 포항시청클럽의 경우, 동호인 팀이 아닌 실업 팀으로의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

실업 팀의 숫자를 늘이는 것과 함께 참여의 기회를 꾸준히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 부분은 축구협회의 몫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전국 규모의 실업 리그 뿐만 아니라 지역단위 리그를 활성화한다거나 준실업팀 수준의 직장인 팀이나 동호인 팀들을 실업 축구의 테두리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것도 좋은 시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확실한 연고 기반을 가지지 못한 실업 팀들을 지역 연고화 시키는 일, 그리고 지역 연고 팀으로서 누릴 수 있는 일정 수준의 연고권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제도를 한시적으로 마련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프로 팀들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실업 축구는 장차 프로 리그와 같은 궤도에서 발전을 도모할 파트너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당장은 1군 무대에 설 수 없는 선수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 될 것이고, 후에는 또 하나의 선수 수급원이 될 수 있다. 부디 실업 축구를 남의 일로 바라보는 실수를 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번 FA 컵이 실업 축구가 발전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작게는 실업 축구의 존재 가치와 실업 팀으로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고, 크게는 아마추어와 프로를 포괄하는 총체적인 점검과 발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눈여겨 보고 노력을 기울일 때에 가능한 일이다.

서울과 대구 연고 프로 팀의 창단 문제나 인천을 연고로 하는 할렐루야 팀의 프로 재창단, 광주를 연고로 하는 상무 팀의 프로화… 프로 팀을 논하기 전에 그들이 광주시청이나 인천시청 실업 팀의 창단을 고려할 수는 없는 것일까? 프로 팀 창단과 백지화, 그리고 재검토라는 일상적인 뉴스를 더 이상 반복하지 말고, 차라리 시민구단으로 출범하는 실업 팀을 만들면 어떨까?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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