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국가 위험' 오르니 신용등급 게걸음

  • 입력 2003년 1월 16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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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기준으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A-이다.

외환위기로 투자부적격인 B+로 떨어졌던 1997년 12월보다 엄청 올랐지만 외환위기 전의 AA-보다는 아직도 3단계나 낮다. 신용등급만으로 볼 때 외환위기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할 수 없는 셈.

작년 말부터 불거진 북한핵 문제와 새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우려가 갈길 바쁜 신용등급 상승의 발목을 잡고 있다.

무디스는 작년 11월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높여 이르면 올 상반기 중에 신용등급을 올릴 수 있음을 예고했다.

그러나 무디스의 국가신용등급 평가 최고책임자인 토머스 번 전무는 7일 “북한핵과 한국의 반미시위를 외국인투자자들이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15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는 “북핵 문제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낮출 요인은 아니다”고 약간 뉘앙스가 다른 말을 했지만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올리기에는 북한 핵의 부담이 크기 때문.

S&P도 현 등급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혀 상향조정에 신중한 모습이다. 한국의 국가위험(컨트리 리스크)이 새로 부각되면서 외국인이 한국 주식투자를 자제하는 모습도 보인다.》

▽한국의 컨트리 리스크는 없다?〓국가위험이 높아지면 환율과 채권의 가산금리(스프레드)가 올라간다. 작년 말부터 원-달러환율이 떨어지고(원화가치 상승) 스프레드도 안정세를 보여 외형상 한국의 컨트리 리스크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원-달러 환율은 15일 달러당 1175.4원에 마감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겠다고 밝힌 작년 12월12일 달러당 1210.0원보다 34.6원(3.9%) 떨어졌다.

2008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외평채의 가산금리도 소폭 올랐지만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1월14일 현재 가산금리는 0.98%포인트로 작년 12월12일(0.82%포인트)보다 0.16%포인트 올랐다.

지난해 0.78∼1.20%포인트 사이에서 오르내렸던 점을 감안하면 큰 변화는 아니다.

외국인은 작년 12월12일부터 15일까지 거래소에서 3200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순매수 규모(2146억원)보다도 늘었다.

▽주가는 푸대접(디스카운트)〓그러나 주가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현재 종합주가지수는 640대. 작년 4월 940선까지 올랐던 것에 비해 32%나 떨어져 있다. 3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은 연 4%대로 떨어져 외환위기 전의 3분의 1수준이다.

지난해 상장기업 순이익이 30조원에 육박해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에 비해 엄청난 저평가다.

삼성전자의 주가수익비율(PER)은 8.02배에 불과하다. 경쟁관계에 있는 미국 인텔의 PER는 33.92배, 일본 소니는 25.88배다. 핀란드의 노키아도 20.83배나 된다.

크레디리요네(CL)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북한핵, 미-이라크전쟁,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친(親) 노동계 성향, 한국의 소비 위축 등이 한국 주가를 저평가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주가가 많이 떨어졌지만 상황이 불투명해 ‘매수’를 추천하기에 부담이 된다는 것.

삼성증권도 14일 북한 핵 위기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져 종합주가지수가 500선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원-달러 환율과 외평채 가산금리로는 한국의 컨트리 리스크를 제대로 분석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LG증권 박윤수 상무는 “원화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미국이 달러화 가치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리기 때문”이라며 “금융 및 재정정책에 한계를 갖고 있는 미국이 경기 활성화를 위해 달러 약세 정책을 펴 달러가 유로와 엔에 대해 약세를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경민 한가람투자자문 사장은 “외평채를 갖고 있는 투자자는 대부분 한국 기관”이라며 “북한 핵 문제가 불거져도 외평채 스프레드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남종원 메릴린치증권 서울지점장도 “미국과 한국이 북한핵 문제에 대해 명확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노 당선자의 정책 방향이 뚜렷하지 못해 외국인이 눈치를 보며 관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이 9일 3366억원어치나 순매도한 것처럼 미국 증시가 하락하는 등 여건이 나빠지면 대량으로 팔 정도로 투자심리가 나빠져 있는 상황이다.

▽불확실성을 없애는 게 중요〓진재욱 UBS워버그증권 서울지점장은 “외국인이 북한 핵이나 새 정부 정책에 대해 우려하는 것보다 한국 기관과 개인이 더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투자자들이 마음놓고 주식투자를 할 수 있도록 불확실성을 없애주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살로먼스미스바니(SSB)증권은 한국의 일부 기성세대와 부유층이 노 당선자의 노동자 지향, 재벌개혁, 대북정책, 분배 정책 등을 우려하고 있지만 오해라고 밝혔다. 새 정부가 시장친화적 정책을 펴지 않을 것이라고 볼 만한 합당한 이유가 없는데도 불안을 느낀다면 해소해주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홍찬선기자 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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