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의 모바일 칼럼]고이케는 ‘한국판 안철수’?…아베에 패한 진짜 이유

허문명 기자 입력 2017-10-24 03:00수정 2017-10-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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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를 직접 본 건 지난해 12월 일본 외무성이 도쿄에서 주최한 ‘여성을 위한 세계총회(WAW)’에서였다. 일본계 여성 지도자들을 포함해 27개국에서 각국을 대표하는 여성공무원, 언론인, 학자, 국제기구 종사자 등 500여명의 여성들이 모인 자리에서 고이케 지사는 아베 아키에 총리 부인과 함께 개막 연설을 했다.

바로 몇 달 전(7월31일) 선거에서 자민당에 ‘역사적’ 대참패를 안기며 최초의 여성 도쿄 도지사에 당선된 직후여서기도 했지만 강하지만 부드러운 어조로 ‘도쿄도 개혁 청사진’을 40여분 간 프레젠테이션 하는 모습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기자는 고이케에 대한 일본 여성들의 인기가 폭발적이란 사실에 놀랐다. 참석자들은 그의 연설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며 박수를 치고 연설이 끝나자 사인을 받으려고 길게 줄을 서기도 했다.

이후 서울에서도 그에 관한 기사에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월급을 절반만 받겠다며 솔선수범하는 행정개혁 이미지를 내세우고 도쿄 츠키지 시장에 안전모에 하이힐을 신고 나타나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며 이전을 백지화하는 등 전임자 정책을 뒤집는 마이 웨이 행보 등 일거수일투족이 화제였다. 마침내 신당까지 만들며 정계에 돌풍을 일으키자 그녀가 아베를 이기고 일본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나올 수 있을지 일본 전체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막상 총선을 코앞에 둔 일주일 전, 일본에 와서 느낀 것은 고이케에 대한 인기가 불과 10개월 전에 확인한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차갑게 식어있었다는 거였다.

“좌파 정당인 민진당과의 합당은 고이케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하는 대표적 패착이다. 노선에서 차이가 있는 당과 쉽게 합당을 결정한 것도 그렇고 합당이후 의원들을 걸러내서 받겠다는 뺄셈의 정치는 그가 통 큰 포용력의 정치인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기대했는데 실망스럽다.” 평소에 아베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60대의 여성사업가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속내를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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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쓰쿠바대학에서 만난 40대 남성 교수는 선거 3일전에 이런 말도 했다. “고이케는 거친 정치현장에서 마치 아들을 다루는 엄마처럼 남자들과 싸우지 않고 ‘달래는’ 방식으로 조종할 줄 아는 여자다. 남성들도 거부감이 적다. 하지만 북핵위협 등 일본의 국가과제가 엄중한 데 그는 정치철학과 비전이 없어보인다. 이미지로만 지도자가 되긴 어렵다 고이케 돌풍은 끝났다.”

일본 여성들 중에는 남자들의 거친 발언에도 ‘부드럽게’ 할말은 하는 고이케 스타일에 대해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지난 도쿄 도지사 유세 때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지사가 고이케를 겨냥해 “화장을 짙게 떡칠하는 여자에게 도쿄를 맡길 수없다”고 공격한 적이 있었지만 고이케는 “사실은 얼굴에 감추고 싶은 상처가 있어서 화장을 짙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답해 남녀 유권자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 캠페인은 도지사 선거때까지는 먹혔을지 몰라도 정권을 놓고 싸우는 중의원 선거에서는 역부족이었음이 이번에 드러난 셈이다.

고이케가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한국의 안철수랑 비교하는 사람도 있었다. 5년간 특파원을 지냈던 일본 유력지 기자는 “정치철학이 모호하고 중요한 순간에 결단을 못내리는 모습에서 안철수씨 이미지가 겹쳤었다”며 “이번 선거에서 이긴 후 총리가 되려면 선거 전에 도지사 직을 던지고 배수의 진을 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국가 미래를 건 선거인데,이겨도 총리가 될 수 없는 지도자에게 표를 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라고 말했다.

‘일하는 여성들의 롤모델’면에서도 커리어우먼들의 평가는 인색했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40대 여성 기자는 “고이케는 회사 내 인간관계로 치자면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남자 선배들을 특유의 여성성을 발휘해 호감을 느끼게 하는, 애교만점 스타일의 커리어 여성”이라며 “여성성이 아니라 능력으로 남성들과 대등하게 평가받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 커리어우먼들에겐 일보다는 외모나 인기에 집중하면서 남들의 환심을 사려는 사람이란 이미지가 강하다”고 꼬집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안보가 핵심이슈로 등장하고 국제관계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대다. 중년 이상 유권자 비율이 많고 한국 이상으로 남녀차별 선입관이 강한 일본에서 여성지도자가 국가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결단력과 포용력, 외교안보와 경제 등 국가과제에 대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함을 잘 보여준 게 이번 일본 선거였다. 현지에서 선거를 관전하며 기대와 질시를 한 몸에 받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여성 고위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어느 나라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정치인들이 더 큰 무대에 서려면 ‘남에게 보여지는 나’만 바라보며 순간의 인기에 영합할 것이 아니라 ‘내가 국민들에게 무엇을 발산한 것인가’하는 내면으로부터의 깊은 자기철학이 있어야한다는 것을 이번 도쿄선거에서 느낄 수 있었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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