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꽃의 본질을 되찾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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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석, Fantasiless_performance, 2014년
장준석, Fantasiless_performance, 2014년
작가 장준석이 전시장에서 물뿌리개로 꽃에 물을 주는 행위예술(퍼포먼스)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놀랍게도 살아있는 꽃이 아니라 한글 ‘꽃’을 형상화한 조각품에 물을 주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전시장 바닥에는 검정 합성고무로 만든 ‘꽃’ 글자 문양 카펫을 깔아놓았다.

실제 꽃이 아닌 꽃 글자를 조각으로 만들어 물을 주는 행위는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검은색 꽃 글자 문양을 관객들이 밟고 지나가게 한 의도는 무엇일까?

보통 사람들에게 꽃은 아름다움, 희망, 평화, 인생의 절정, 또는 허무함을 상징한다. 그런 이유에서 꽃을 지나치게 미화시키거나 자신의 욕망과 환상을 투영시키는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장준석은 감상적인 대상으로만 느껴지는 꽃이 아닌 꽃의 본성과 순수한 아름다움을 미술에 표현하고 싶었다.

꽃 글자의 자음과 모음(ㄲ, ㅗ, ㅊ)을 레이저로 오려내고 자동차 도색용 페인트를 칠해 인공미를 강조한 것도, 관객들에게 ‘꽃’ 글자 문양을 밟게 한 것도 인간이 꽃에 부여한 감각적인 면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한편 ‘꽃’ 조각에 물을 주는 행위에는 존재의 참모습을 추구하겠다는 예술가적 소망이 담겨 있다. 꽃 글자의 형상을 빌려 존재의 의미를 탐구한 장준석의 작품은 김춘수의 시 ‘꽃’에 나오는 문장들을 떠올리게 한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장준석의 꽃은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이다. 그래서 꽃을 감상의 대상이 아닌 인식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장준석#꽃#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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