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신군부 10·27 법난’ 겪은 월주 前조계종 총무원장

  • 입력 2008년 9월 11일 02시 58분


조계종 총무원장을 두 차례 지낸 불교계 원로 월주 스님은 최근 정부와 불교계의 갈등과 관련해 “실마리가 없어 보이는 어려운 문제도 대화를 하다 보면 풀릴 수 있다”며 “정부와 종교계 모두 노력해야 상생하고 공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조계종 총무원장을 두 차례 지낸 불교계 원로 월주 스님은 최근 정부와 불교계의 갈등과 관련해 “실마리가 없어 보이는 어려운 문제도 대화를 하다 보면 풀릴 수 있다”며 “정부와 종교계 모두 노력해야 상생하고 공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魚 경찰청장 문제도 대화하면 길이 보일 것”

종교 편향 시비로 불거진 정부와 불교계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불교계는 대통령의 사과와 어청수 경찰청장의 파면 등 네 가지 요구 사항을 주장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9일 국무회의에서 유감을 표명했다.

1980년과 1994년 두 차례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불교계 원로 월주(73·영화사 회주) 스님을 10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동 아차산 자락의 영화사(永華寺)에서 만났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불교계가 유린당하는 ‘10·27 법난(法難)’을 겪었던 스님으로부터 종교 편향 사태와 관련된 해법을 들었다.

―대통령이 9일 유감을 표시했습니다.

“국무회의에서의 유감 표명에 대해 자세히 들었고 늦은 시간이지만 대통령과의 대화도 유심히 봤습니다. 만시지탄이지만 유감 표명에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서 ‘통합을 위해 노력했는데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면 제 불찰’이라고 말한 것은 진전된 것으로 봅니다.”

―대통령의 유감 표명이 있었지만 불교계는 나머지 3개항의 이행을 촉구하면서 지역불교도 대회 개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단 대통령이 성의 있게 유감을 표명한 만큼 사태가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대책위원회와 대통령수석비서관들이 잇달아 만나 대통령의 유감 표명이라는 좋은 해법을 찾은 것이 일례입니다. 양측이 시간을 갖고 대화한다면 해법이 나올 겁니다. 물론 정부는 상처받은 불심을 읽어 더 겸허해져야 합니다.”

―대통령이 취임 6개월 만에 두 번째 사과를 하게 됐습니다.

“이 대통령이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어야 국민도 성공하고 행복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불행해집니다.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국민의 평가와 자신의 평가가 다르지 않다는 말은 진솔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국민 정서를 잘 읽고 있다면 국민을 위한 정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정부와 불교계의 상생을 위한 조언을 해 주신다면….

“무엇보다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자기 신앙을 앞세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보다는 당, 당보다는 국가의 시야에서 말을 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기독교 장로이기 때문에 더 조심할 필요가 있겠죠. 자신의 종교는 잊고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이뤄내는 것이야말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불교의 자비입니다.”

스님은 인터뷰에 앞서 사전 요청한 질문지를 들여다보며 “참 어려운 문제들이네”라고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차분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견해를 밝히던 스님의 목소리가 사랑과 자비를 언급하는 대목에서 높아졌다.

―어청수 청장 파면 건은 현재 양측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해법은 없는지요.

“경찰청장 건은 정말 풀기 어려운 난제죠. 복음화 포스터에 등장하는가 하면 불교계 대표의 차량을 과잉 검문하고 범불교도대회 참가를 방해한 것을 감안하면 불교계의 주장은 당연합니다. 1994년 총무원장 시절 농민단체와 지하철노조가 1개월 이상 조계사에 있었지만 검문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법질서가 무너진 촛불시위 와중에 법질서를 잡는 데 기여한 어 청장이 공권력의 상징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불교계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겁니다. 모든 것이 막힌 것 같은 상황에서도 시간을 두고 대화하면 길이 보이는 법입니다.”

―9일 국무회의에서 ‘10·27 법난’ 피해자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공포됐습니다. 당시 신군부에 의해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끌려가 조사를 받고 총무원장 직에서 물러난 스님 처지에서는 감회가 클 것 같습니다.

“전두환 장군을 대통령 후보로 지지하는 광고를 내라고 신군부에서 세 번이나 강요했는데 정교분리 원칙 때문에 안 된다고 거절했습니다. 그게 화근이었죠. 10·27법난의 본질은 군인이 법의 체계를 넘어 군홧발로 불교계를 유린한 겁니다. 법과 시행령 제정에서도 불교계의 많은 설득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80% 정도 만족할 수준인데 앞으로도 보완해야죠.”

―과격해진 촛불시위를 비판하는 발언도 하셨습니다.

“자기주장이 옳다고 생각해도 법의 테두리 내에서 표출해야 합니다. 촛불시위는 초기에는 평화적이었지만 나중에는 일부 세력에 휩쓸려 변질됐습니다. 일류국가로 발전하려면 시스템과 법이 존중받는 분위기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이는 진보든 보수든 모두 명심해야 하는 진리입니다.”

―불교계에 조언을 하신다면….

“불교계는 이번 종교 편향 사태를 계기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자비행(慈悲行)을 적극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불교의 이미지도 높일 수 있고 불교에 대한 거리감과 오해를 줄일 수 있죠. 불교의 안살림이 수행이라면 이젠 바깥 살림에 더 신경 써야 합니다.”

―상생과 화해를 위한 좋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사무량심 자비희사(四無量心 慈悲喜捨)’라고 했죠. 나와 이웃에게 즐거움을 주고 고통을 덜어주고 기쁨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종교에 관계없이 이런 보살행의 덕목을 가져야 상생과 공존의 세계가 열릴 수 있습니다. 또 하나, ‘견화동해(見和同解)’라는 말도 떠오릅니다. 생각이 서로 통해야 제대로 화합할 수 있다는 것인데 머리를 맞대고 꾸준히 대화하기를 바랍니다.”

:월주 스님:

△1935년 전북 정읍 태생 △1956년 화엄사에서 금오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 수지 △1970∼1973년 조계종 총무원 교무부장 △1973년 조계종 총무부장 △1980년 조계종 총무원장 △1989∼1997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1994∼1998년 조계종 총무원장 △1995∼1998년 한국불교종단협의회장 △1998년∼ 영화사 회주 △2004년∼ 지구촌공생회 대표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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