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이산가족 또 울리는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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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9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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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형남 논설위원
방형남 논설위원
예비역 육군 소장인 전제현 장군(82)은 추석 같은 명절이 싫다. 그는 1948년 북한 공산당의 박해를 피해 월남한 실향민이다. 명절이 되면 북한에 두고 온 가족 중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있는 동생들이 보고 싶어 가슴이 메어진다.

혈육상봉 외화벌이 하려는 北

남북통일과 가족 상봉을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하던 전 장군은 2000년 3월 평양 방문 기회를 얻었다. 한민족복지재단 이사로 활동하면서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약품과 의료 지원을 할 때였다. 북한 방문 5개월 뒤 북측 안내자가 “동생이 평양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전 장군은 그해 10월 혈육을 만날 기대에 부풀어 평양으로 달려갔으나 북측 사람들은 찾는 중이라며 딴청을 피웠다. ‘가족 상봉’은 더 많은 지원을 받아내기 위한 미끼였다. 이후에도 동생을 만나게 해 주겠다는 말에 속아 평양에도 가고 중국에도 갔지만 모두 헛걸음이었다.

2007년 중국 선양에서 만난 북측 사람들은 상봉 대가로 50만 달러를 내라고 했다. 30만 달러로 깎아주겠다는 제안을 뿌리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마지막에는 6만 달러를 불렀다. 인륜 앞의 더러운 흥정이었다. 그들이 동생의 사진과 편지를 보여주었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여러 차례 거짓말을 한 사람들이니 돈만 챙기고 “동생이 며칠 전에 갑자기 죽었다”고 할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전 장군은 “동생을 만나지도 못하고 저들의 외화벌이 사업에 멍청하게 동참할 수는 없다”고 판단해 피눈물을 삼키며 상봉을 단념했다.

전 장군은 얼마 전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와 통일부 대변인이 주고받은 이산가족 관련 발언 때문에 올 추석을 맞는 심정이 더욱 착잡하다. 홍 대표는 “얼마 남지 않은 추석에 이산가족 상봉을 할 수 있도록 남북 간에 협력할 것을 촉구한다”며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나 통일부는 “올해 추석을 계기로 상봉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거나 추진하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홍 대표가 “주제넘다”고 화를 내자 통일부는 “여당 대표의 언급에 반박한 것이 아니다”며 몸을 낮췄다. 한나라당 대표와 정부 당국자가 어설프게 주고받는 말이 이산가족에게 추석선물이 되기는커녕 상처만 건드리고 말았다.

전 장군처럼 북한에 속은 이산가족이 한둘이 아니다. 그들은 정부의 노력에 마지막 기대를 걸지만 통일부의 최근 움직임은 이산가족들의 울화통을 터지게 할 정도로 오락가락이다.

북한이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를 강탈했는데도 통일부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남북은 넓고 편리한 시설에서 어느 때나 이산가족을 만나게 하자는 취지로 면회소를 지었다. 남북은 ‘면회소 완공 후에는 이산가족 면회를 정례화한다’는 합의도 했다. 북한이 금강산 관광 중단을 이유로 자행한 면회소 강탈은 이산가족의 꿈을 짓밟는 반인도적 행위다.

금강산 면회소 강탈, 말 없는 통일부

통일부는 면회소 강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못하면서 북한이 요청하지도 않은 수해 지원을 하려다가 난처한 신세가 됐다. 통일부는 50억 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며 일방적으로 일을 추진했다. 1차로 영유아용 영양식 20만 개를 보내겠다며 물자 인도 장소를 알려달라는 전통문을 보냈지만 북한은 대답이 없다. 북한에 “제발 받아 달라”고 하소연하는 한심한 모양새다.

인도주의는 자의적 선별적으로 적용하는 가치가 아니다. 인도적 차원에서 대북(對北) 수해 지원을 하겠다면 역시 인도적 사안인 이산가족 면회소의 원상회복도 요구해야 한다. 생존해 있는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8만3000여 명의 77%가 70세 이상 고령자다. 이산가족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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