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방형남칼럼]태극기 언제 휘날리나

  • 입력 2004년 2월 11일 1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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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 도착한 일본 자위대 사진과 국회 앞의 한국 시위대 사진을 1면에 연속적으로 게재한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의 의도를 모를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작심하고 ‘한국과 일본은 다르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 아닌가. 통속적으로 사진설명을 달면 ‘일본, 드디어 전투지역에 군대까지 보내 세계무대에서 할 일 다 하다’, ‘한국, 여전히 우물 안에서 머리 터지게 싸우고 있다’ 정도 되지 않을까.

파이낸셜 타임스의 보도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국민이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번 주 한국과 일본이 무슨 일을 했는지 돌아보기 바란다.

▼일장기는 나부끼는데 ▼

우리나라 국회가 이라크 파병 동의안을 외면하던 9일, 일본 참의원은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동의안을 가결했다. 한국에서는 정신적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동의안의 본회의 상정을 앞장서서 저지한 반면 일본에서는 여당이 가결을 주도했다.

이날 일본 언론은 하루 전 이라크 사마와에 자위대 본대 1진 60여명이 도착한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자위대가 2차대전 패전 이후 처음으로 전투지역에 진입했으니 일본 언론이 흥분할 만하다. 반면 한국 언론은 이라크 파병에 차질이 빚어질지 모른다며 조심스러운 전망을 했다.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청을 수용한 배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과의 동맹관계,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을 위해 기여한다는 대의명분이 결단을 이끌어낸 공통분모였다. 그런데 두 나라의 파병 과정은 왜 딴판인가.

지난달 사마와에 도착한 자위대 선발대장 사토 마사히사 1등 육좌(육군 대령)는 일본 국민의 영웅이 됐다. 일본 젊은이들은 “말도 잘하고 멋지다”, “사토를 닮고 싶다”며 아우성이다. 팬클럽까지 생겼다.

일본의 여론도 변했다. 교도통신이 6, 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파병 찬성이 48.3%, 반대가 45.1%로 나타나 처음으로 찬반이 역전됐다. 지난해 반대가 찬성보다 20%포인트 정도 많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놀라운 반전이다. 자위대에는 이보다 큰 격려가 없을 것이다.

일본의 변화는 만들어졌다. 주역은 일본 정부였다. 일본 정부는 사후 승인을 전제로 파병법을 만들어 국회의 최종 승인 이전에 파병을 가능하게 했다. 자위대 선발대는 중의원이 파병 동의안을 승인하기 10여일 전인 지난달 19일 이라크에 도착했다.

정부와 국회가 힘을 합쳐 파병을 기정사실화하자 국민이 변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일단 분위기가 형성되면 여간해서는 반대론을 제기하지 않는 독특한 국민 성향을 적절히 활용해 목적을 이뤘다. 이것이 국가경영능력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사진 비교는 한국과 일본 정부의 경영능력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파병 장병 사기 죽여서야 ▼

우리는 1000명 규모인 일본의 3배가 넘는 3600여명을 이라크에 보낼 예정이다. 일본보다 당당하게, 더 큰 목소리를 낼 자격이 있다. 일본은 이라크 파병을 계기로 전수(專守)방위의 굴레를 벗어버리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우리는 그럴 염려도 없는데 왜 정부와 국회가 자꾸 군의 사기를 죽이고 있는가. 마지못해 보내는 것과 기꺼이 가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파병 승인이 늦어지면 파병 준비도 부실해진다.

파병부대 선발 경쟁률이 10 대 1을 넘어섰다고 한다. 파격적인 대우가 지원이 몰리는 요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경험을 통해 전투력을 키우고 군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군인다운 의욕, 이라크의 평화유지와 재건을 위한 국가 명령에 따른다는 국민다운 각오가 없다면 위험지역 근무를 자원하기 어렵다. 당리당략과 총선에 눈이 멀어 국가를 망각한 국회의원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일장기는 이라크에서 기세 좋게 나부끼고 있는데 태극기는 언제 휘날릴 것인가.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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