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일과 꿈]전현희/하나가 된 '엄마의 꿈 나의 꿈'

  • 입력 2003년 5월 21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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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솔직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TV나 책에서 나오는 직업 중 근사해 보이는 직업을 하나 정해 놓기로 작정했다. “변호사요!” 물론 변호사가 어떤 직업인지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학창시절 공부를 잘 하셨다는 우리 어머니는 전문적인 직업을 갖지 못해 당신의 꿈을 잃고 인생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강했던 듯하다. 그래서 딸에게는 꼭 의사가 돼야 한다고 어렸을 때부터 신신당부하셨다. 부모님의 강요에 가까운 권유로, 막상 치과의사가 되었지만 왠지 나의 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항상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에 불타던 내게는 너무 젊은 나이에 찾아온 안정적이고 평온한 삶이 오히려 숨 막혔다.

▼치과의사 평온한 삶 숨막혀 ▼

그때 우연히 보게 된 ‘닥터스’라는 소설은 내 인생에 새로운 단서를 제공해줬다. 외과의사인 주인공이 손을 다쳐 수술을 못하게 되자 로스쿨로 진학해 변호사로 변신한다는 얘기였다. 일단 치과의사가 되었으니 평생 치과의사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게 노력만 하면 자신이 원하는 또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다는 메시지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의사 출신으로 변호사가 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 또한 내게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란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왔다. 일단 한번 도전해보기로 하고 육법전서를 손에 들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이란 결과보다는 살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법시험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나는 합격에 목표를 두지 않고 공부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려 했다.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치과의사가 법이란 생소한 분야를 공부했다는 사실 자체가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 너무나 행복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마음을 비우고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를 즐겼던 것이 오히려 행운을 불러왔나 보다. 공부 시작 3년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기쁨을 안았다.

하지만 변호사 자격증은 또 다른 도전을 위한 출발에 불과했다. 자연스럽게 나의 경력을 살려 의료전문 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의료전문 변호사란 흔히 의료사고만을 전문으로 다룬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의료나 의료인과 관련된 산업 전반에 걸친 영역을 취급한다. 때문에 기업, 노동, 환경, 통상법 등 모든 법률영역에 걸친 광범위한 지식이 필요했고, 정말로 열심히 공부를 해야만 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의뢰인과 상담하고, 재판 다녀오고, 소송준비하고, 중간에 짬짬이 공부하고, 일하다가 밤 12시가 되어 퇴근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이런 생활은 변호사가 된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일요일이 되어야 비로소 같이 살고 있는 남편과 딸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하루하루가 치열한 전투 같다.

의료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다 보니 의료관련 정책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의료관련 정책은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파탄 위기 등 여러 문제점들을 안고 있으나, 그 중에서도 특히 정부와 의사간의 갈등은 심각한 수준인 것 같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의료라는 특수성 때문에 정부는 기본적으로 공적 의료체계를 추구하나 실제로는 민간 의료기관들이 대부분의 의료체계를 담당하고 있는 현실적 모순 때문으로 보인다. 2000년 의약분업으로 인한 의료대란은 이런 갈등이 외부로 폭발한 것이었다. 공적 의료정책의 근간을 탄탄하게 구축하되 민간 의료기관들을 동시에 정부의 협력자로 이끌어 낼 수 있는 현명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의료전문 변호사’로 제2인생 ▼

한편 내가 만약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혜택 받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앞으로의 삶은 자신만을 위한 도전보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도전을 하고 싶다.

▼약력 ▼

△1964년생 △서울대 치대 졸업(1990년) △제38회 사법시험 합격(1996년)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2000년) △산업자원부 통상고문변호사(2003년)

전현희 대외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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