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김제완]한국 과학의 3不

  • 입력 2007년 3월 26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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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인적자원부의 3불정책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대선주자의 반응이 제각각이고 노무현 대통령도 소신을 밝혔다. 서울대를 비롯한 많은 대학이 학생선발의 자율권을 요구한다. 현장에서 볼 때 공대 신입생 중에 적분기호조차 모르는 학생이 있는 현실은 3불정책의 어두운 면을 분명히 드러낸다. 대입 본고사가 있었다면 이런 학생이 적분을 기본으로 사용하는 이공계에 들어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3불정책이 가져오는 밝은 면도 있다. 돈이 없어서 학원 공부를 하지 못하는 서민층 자녀의 진학 기회를 조금 넓혀 주는 측면이 있을 수 있고 기여 입학제가 가져오는 상대적 박탈감을 막아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교육, 특히 과학교육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지는 현실을 보면서 정말로 안타깝고 이를 막을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 과학교육이 많은 지식을 암기하고 좋은 시험성적을 얻는 쪽으로 흘러가는데, 암기 위주의 교육이야말로 우리가 범해서는 안 될 3불 중 하나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암기 위주의 교육은 학생을 완전히 망가뜨린다.

피크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미국 뉴욕시의 전화번호부를 송두리째 외우며 1만 권의 책 속에 들어 있는 내용을 다 외운다. 어느 책 몇 장의 몇째 줄에 어떤 단어가 있는지 다 안다. 혼자서 밥도 먹지 못하는 심한 자폐증이지만 그는 자신이 암기한 지식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멋지게 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암기왕이 우리 사회가 바라는 인재는 아니다.

정반대의 예가 있다. 헬렌 켈러다.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어린 딸을 위해 헬렌의 아버지는 전화 발명자인 그레이엄 벨에게 부탁해 애니 설리번이란 유능한 여교사를 소개받았다. 설리번은 어린 헬렌을 시냇가로 데리고 가서 아무 말 없이 손을 시냇물에 담갔다 다시 끌어냈다. 그리고 손바닥에 ‘Water’라는 글자를 손가락으로 쓰는 행동을 말없이 되풀이했다. 설리번은 어린 헬렌이 물이라는 실체를 ‘느끼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헬렌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인식한 실체가 물이며 글자는 ‘W’였다.

차이는 분명하다. 피크처럼 암기만 하면 사회에 공헌하는 인물이 될 수 없다. 가슴으로 느끼며 공부했던 헬렌은 사회에 큰 공헌을 했다. 요즘처럼 메마른 사회에서 가슴으로 느끼는 교육이 인문사회 및 과학 전반에 필요한데 과학의 경우 이는 절대적이다.

원자 속 미지의 세계를 탐구할 때 속을 들여다보고, 모습을 정리하고 외우게 한 뒤 그를 토대로 연구할 수 없다. 미지의 자연계에는 외울 대상이 없다. 자연은 특정 언어로만 표현되지 않으므로 가슴으로 느낀 바를 믿고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야 한다.

국민 모두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니는 12년 동안 수학공부를 했지만 암기 위주였기에 보태고 빼고 곱하는 일을 넘어서 수학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현실을 보면 암기 위주 교육의 허상이 느껴진다.

두 번째 3불은 과학을 실용적인 도구로만, 경제 발전의 도구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기초과학이 지나치게 목적 지향적이면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창조적인 연구결과가 나오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대학교수나 연구자의 업적 평가를 과학논문인용색인(SCI) 인용 횟수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인용 횟수는 하나의 참고자료이지 그것 자체가 업적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과학이 국가 경쟁력이라는 시대에 우리 모두가 과학교육, 과학연구, 과학정책에서 해서는 안 될 세 가지를 되새기면 좋겠다.

김제완 과학문화진흥회 회장·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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