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박철/작은 것에 귀기울이자

  • 입력 2004년 7월 12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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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수도꼭지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작은 새 소리, 어느 집에선가 울려 나오는 피아노 소리, 가는 빗방울 소리, 그런 작은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조용하고 세심하게 그리고 아주 열심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작은 소리에 귀를 여는 것, 그것은 바로 작은 소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청각의 개방이다.

이른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숲속에 들어가 숨을 고르고 단전호흡을 하면 더 작은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내가 번잡한 생각으로 마음이 분주하면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분명 소리는 존재하나 나에게 들리지 않는 것이다. 숲속에서는 사위가 조용하다. 그러나 조용한 중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가끔 만나는 작은 소리들이 크고 웅장한 소리보다 더 큰 아름다움을 담고 있을 때가 있다.

볼프의 이탈리아 가곡집은 ‘작은 것일지라도’라는 곡으로 시작된다. 볼프의 가곡집 가운데 가장 먼저 작곡된 것이 아니면서도 이 곡이 제일 앞에 실린 까닭은 아무리 작은 것에도 귀중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내용을 일종의 캐치프레이즈로 삼으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벨리우스는 ‘아름다움이란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의 것’이란 말을 했다.

아침이면 우리 집을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 있다. 바로 까치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우리 집에서 키우는 개(다롱이) 집을 찾아온다. 개집 앞, 다롱이 밥그릇에 남은 밥찌꺼기를 먹으러 오는 것이다. 다롱이와 까치는 친구가 되었다. 까치가 자기 밥을 먹어도 다롱이는 절대로 짖지 않는다. 까치가 밥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까치도 다롱이를 전혀 경계하지 않는다. 다롱이가 자기 집에서 나와 서성거려도 까치는 다롱이 밥을 먹는다. 얼마나 평화롭고 정겨운 아침 풍경인가. 아침에 ‘까까∼’ 하는 소리가 들리면 까치가 다롱이 집을 방문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이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한다. 가진 자는 너무 많이 가졌고, 없는 자는 너무 가난해서 생기는 문제들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내가 많이 가졌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고,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다. 내가 이웃과 나누지 못하는 것이 불행이며, 내가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다롱이와 까치처럼 사람들도 함께 나누고 양보하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작은 자(小子)’를 무시하면 안 된다. 나보다 가진 것이 없다고, 나보다 배운 것이 적다고, 나보다 자랑할 것이 없다고 업신여기거나 천대하면 안 된다. 그런 편협한 생각이 나를 좀먹게 하고 병들게 하는 것이 아닌가.

법정 스님은 그의 ‘무소유’라는 책에서 집착을 버리고 삶을 관조하는 것에 인간의 진실이 있다고 했다. 사람이 허욕에 사로잡히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실상은 눈이 먼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작은 것을 소중히 볼 줄 아는 마음에 깃들여 있다.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천시하지 않고 거기에 생명의 경외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아닌가.

박 철 시인·지석교회 목사

약력 : 1955년생. 20년째 농촌 목회 활동을 하고 있으며, 8년 전 인천의 외딴 섬 교동도에 정착했다. ‘느릿느릿 이야기(slowslow.org)’라는 웹사이트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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