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다원주의가 만드는 슈퍼파워 인도

  • 입력 2008년 1월 19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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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25년 근속(勤續) 휴가를 받아 한반도의 15배 크기인 인도 대륙을 뭄바이에서 뉴델리까지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둘러보았다. 곳곳에서 젊은 한국인 배낭 여행자들과 성지 순례를 다니는 불교 신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관광지 주변에는 음식 메뉴를 한글로 써 놓은 식당이 많았다. 중국어나 일본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뉴델리 뭄바이 콜카타 첸나이 벵갈루루 같은 도시들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모습이었지만 대도시의 경제 성장이 인도 전역으로 넘쳐흐르지는 못하고 있었다. 농촌은 한국의 1960년대 풍경이었다. 국토는 광활한데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교통수단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도로 사정이 열악해 교통이 한적한 곳에서도 시속 40km 이상을 내지 못했다. 열차 1등실 침대칸에서 쥐 떼가 산책을 다녀 여성 승객들이 기겁을 했다.

인도는 수많은 인종 언어 문화 종교가 어우러져 사는 사회다. 인도는 독립헌법에서 종교와 문화의 다원주의(多元主義·pluralism)를 천명했다. 아랍과 다수 이슬람 국가는 타(他) 종교의 사원과 예배를 금지하는 데 비해 인도에서는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시크교 자이나교 사원이 공존한다. 힌두교도가 전 국민의 81%를 차지하는 나라에서 이탈리아 출신의 가톨릭교도인 소냐 간디가 집권당 당수를 맡고 있다. 다만 타지마할 등 유명 종교 유적지에서는 광신도 집단의 테러에 대비해 군인들이 경계를 펴고 입장객의 몸수색을 했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다른 길

인도와 파키스탄은 두 세기에 걸친 영국 식민지 통치를 받고 1947년 분리 독립했지만 61년이 지난 지금 두 나라는 딴판이다. 인도는 눈부신 경제 성장과 군사력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슈퍼 파워’로 떠오르고 있다. 인구수로 보면 세계 2위이고, 구매력 기준 3위의 경제력이다. 이에 비해 이슬람교 국가인 파키스탄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 정권치하에서 테러가 기승을 부린다. 지금은 베나지르 부토 여사의 암살로 나라 전체가 혼미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인도의 민주주의와 다원주의가 파키스탄과의 차이를 벌려 놓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뭄바이에서는 삼성전자와 미래에셋의 광고판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인도펀드는 최근 6개월 평균 43.80%의 수익률을 내 지역별 상품 중에서 1위를 기록했다. 인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000달러를 돌파했고, 4년 평균 8.6%의 고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뉴델리에서는 왕복 8차로 도로가 교통체증을 빚는다. 도요타 포드 혼다 스즈키 차량의 틈새를 현대 차들이 비집고 달린다. 대우자동차 상용차 부문을 인수해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인도의 타타모터스는 최근 세계에서 가장 싼값의 초저가 소형차 ‘나노’를 개발했다. 배기량 625cc에 딜러 가격 기준 2500달러로 경쟁 차량의 반값이다. 중국 인도의 중산층이 모두 차를 몰기 시작하면 지구가 몇 개 더 필요할 것이다.

인도의 가전 시장에서 LG전자와 삼성전자가 1, 2위를 다툰다. 휴대전화 1억7000만 명 가입자 중 노키아가 70%를 차지한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휴대전화 가입자는 매달 600만∼700만 명씩 늘어난다. 포스코는 철광석이 풍부한 인도 동부 오리사 주에 독점광업권을 조건으로 2020년까지 120억 달러를 투입해 1200만 t 규모의 일관 제철소를 올 상반기에 착공할 계획이다.

한국기업 11억 시장 약진

인도 헌법은 카스트 제도를 금지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4계급에도 들지 못하는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이 1억7000만 명에 이른다. 콜카타에서 첨단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에 다니는 한 인도인은 자신을 ‘슈피리어 브라만’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최상위 계급 브라만도 슈피리어와 인피리어로 구분된다. 그는 살이 통통하게 찐 미모의 부인을 브라만 계급 출신의 고교 철학교사라고 소개했다. 초등학생 아들은 영어를 쓰는 사립학교에 다녔다.

대다수 가난한 인도인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는 교사도 부족하고 시설도 열악하다.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너무 많아 출석 부르느라 한두 시간을 보낼 정도다. 교육은 인도에서 불평등의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종교와 세속, 세계적 재벌과 거지, 첨단과 원시, 민주주의와 비인간적인 차별이 어지럽게 혼재하는 인도 대륙이 21세기의 경제 군사 강국을 향해 꿈틀거리고 있었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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