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민 칼럼]‘동정’아닌 ‘인정’받는 기업 돼야

  • 입력 2006년 5월 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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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재화를 키워 내는 중추적 조직이다. 그래서 기업을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존재 목적이 이윤추구에 있는 만큼 기업은 본능적으로 탐욕에 빠지기 쉽다. 따라서 기업인들에게 절대적 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고 그 때문에 기업의 부정과 부패를 막기 위한 사회적 견제가 필요하다. 언론이 정치권력뿐 아니라 경제 권력인 기업에 대해서도 감시와 충고를 해야 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정권 들어 정치권력과 관변 사회단체들로부터 기업들이 지나치게 시달림을 받아 왔기 때문에 언론은 오히려 기업을 보호하는 기이한 역할을 맡아야 했다. 그래서 참여정부 출범 이후 시장경제를 수호하려는 언론들이 상대적 약자인 기업을 다소 두둔하는 논조를 보인 경우가 없지 않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자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말이 없어도 낙타나 소를 타면 된다는 식의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기업을 지켜 주려고 일부 언론인들은 재벌에 대해 충고를 절제하기도 했다. 교단의 발전을 위해 내부에서 선의의 충고를 하려다가도 이교도가 나서서 근본 교리를 놓고 시비를 걸면 교인들이 태도를 바꿔 방어에 나서는 것처럼 기업에 대한 언론의 입장도 그랬다.

그러나 기업 활동이 적법하게 이뤄지고 제대로 된 사람이 회사를 합리적으로 경영하고 있을 때에만 여론은 기업을 지지하고 보호하려 할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 기업들이 그 전제 조건을 충족하고 있는지에 대해 요즘 들어 회의적인 느낌이 커지고 있다. 상속문제 지배구조문제 등 후진적 사안들과 관련된 기업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모습에 실망하는 국민이 많아질 때 언론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관용어처럼 쓰고 있는 오너라는 단어자체도 이 나라 기업의 비상식적 현실을 상징한다. 남의 주식이 단 1%라도 있는 기업에서라면 오너라는 단어보다는 지배주주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우리 기업사에는 이른바 오너라는 사람이 대통령선거 판에 나갔을 때 해당 기업 임직원들이 만사 제쳐 놓고 선거운동에 뛰어든 일도 있었다. 유수한 재벌 집안의 피붙이끼리 그 많은 재산 한 푼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서로 옷 벗기기 싸움을 하다가 의법 조치된 것도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오너의 비자금을 마련한 죄로 충성심 강한 임직원들이 검찰에 붙잡혀 가는 모습을 우리는 요즘 텔레비전 화면에서 자주 보고 있다. 임직원들이 그런 처벌을 예견하면서도 오너에게 직언할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 기업의 평균적 수준이자 지배적 풍토이다. 그런 구태 때문에 이 나라에서는 ‘회사가 근로자의 노동력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사는 것’이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오는 것이다.

그 같은 후진적 분위기가 마침내 서열 2위의 재계 총수를 영어의 몸으로 만드는 가슴 아픈 결과까지 초래했다. 이 기업이 국가경제에 큰 공헌을 해 왔는데도 총수가 사재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하자 여론은 흡사 조폭 두목이 구속되면서 사회에 장학금을 내놓겠다는 선언이라도 한 것처럼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번지는 반기업 정서는 1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반성문’도 수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히려 평등주의자들이 아무리 아우성을 치더라도 그것에 굴복하는 모습으로는 사회공헌 기금을 내놓지 않겠다고 할 만큼 기업이 떳떳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기업인이 국제 경쟁력에 쏟고 있는 그만한 정력을 제대로 된 선진형 의식구조로 바꾸는 데 쏟을 수는 없을까. 그래서 동정이 아닌 인정을 받으면서 번창하는 기업이 될 수는 없을까. 기업이 지금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사회주의적 성향의 이 정권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면, 그리고 훗날 시장주의를 신봉하는 정권이 다시 들어선다면 언론은 기업에 대해 보호막 대신 날카로운 비판자로 역할을 바꾸게 될 수도 있다. 그때 재계는 지금과 또 다른 형태의 어려움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이 그런 상황에 대비해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찾아서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새 정권 아래서는 더 많은 기업인들이 더 큰 곤욕을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올지 안 올지는 전적으로 이 시대 기업인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

이규민 大記者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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