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박세일/살 길은 동아시아공동체

  • 입력 2002년 1월 22일 18시 43분


세계의 큰 흐름이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큰 변화의 시기에는 어느 나라든 미래를 향한 적극적 ‘세계구상’을 세우고 과학적인 ‘세계전략’을 짜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동안 독자적인 세계구상과 세계전략이 없었다. 광복 후 40여년간은 소위 냉전시대였기 때문에 대미 의존만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냉전은 끝난 지 오래고 지금 세계질서는 큰 지각변동을 하고 있다. 우리 외교가 자기 목표와 전략을 가져야 할 때다. 한국의 세계구상의 제1목표는 무엇이어야 할까. 한 마디로 ‘새로운 동아시아 공동체’의 구축이어야 한다.

▼안보 통일 경제도약에 필수▼

그 첫째 이유는 동아시아에서의 정치적 군사적 패권주의의 등장은 반드시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동아시아에서 패권주의의 등장은 항상 한반도에서의 갈등과 대립의 격화로, 우리 민족의 불행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동아시아에 평화적 안보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둘째, 세계화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위해서다. 세계무역체제 속에서 우리의 교섭력을 높이고 늘어나는 국제금융의 불안전성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금융적 지역공동체 구축이 필수적이다. 유럽연합(EU)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버금가는 공동체를 동아시아에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셋째, 우리 경제를 명실공히 선진경제로 진입시키기 위해서다. 동아시아는 21세기 세계경제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이 될 것이다. 지역공동체를 통한 지역 내 자유무역의 확대, 전략적 제휴의 강화 등 경제협력 확대를 통해 우리 경제의 제2도약을 이뤄내야 한다.

넷째,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다. 통일 문제는 결코 민족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아시아에 안보공동체와 경제공동체의 구축이라는 ‘큰 움직임’ 속에서 남북통일의 결정적 계기를 찾아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우선 ‘한국의 동아시아 구상’의 기본전략과 원칙을 바르게 세워야 한다. 즉 동맹관계의 강화를 최소전략으로, 그리고 다자간 협력의 확대를 최대전략으로 해야 한다. 동아시아에는 아직 부국강병의 근대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20세기형 국가’도 존재하고 있고 세계화시대에 걸맞은 국가목표와 정치주체의 다양화(정부, 지방단체, NGO 등)가 크게 진전된 ‘21세기형 국가’도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중층(重層)전략이 필요하다. 한미 한일간 기존의 동맹관계(bilateralism)를 일층 공고화하면서 한국 중국 일본은 물론 러시아 몽골, 그리고 동남아국가연합(ASEAN) 등 모두를 포함하는 ‘열린 다자주의(open multilateralism)’를 강력히 밀고 나가야 한다. 솔직히 중국과 일본은 다자주의를 결코 서두르지 않을 것이고 다자주의로 나간다 해도 패권적 의지가 남은 ‘닫힌’ 형을 선호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열린 다자주의’를 갖고 이들을 적극 설득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는 반(反)패권주의의 원칙에 맞고 동시에 작은 나라의 의견도 존중하는 민주주의 원칙에 맞기 때문이다.

둘째, 앞으로는 방어적 수동적 정무외교가 아니라 공격적 능동적 통합외교(군사 통상 문화 민간)를 대폭 강화하고 우리의 세계구상을 갖고 상대국의 정부뿐만 아니라 야당, 기업, 지식인 사회, 언론, 시민사회 등에 적극 파고드는 종합전략이 필요하다. 필자는 수년 전 지금 여당이 된 대만의 민진당이 당시 야당시절에 이미 미국 워싱턴DC에 사무실을 차리고 수십명의 전문가를 상주시키면서 자신들의 대미 대중정책의 타당성을 미 정부와 학자, 싱크탱크, 시민사회에 조직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야당은 물론 여당도 생각하지 않는 일을, 아니 정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을 대만의 경우 일개 야당이 노력하는 것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강대국과의 외교가 어렵다고만 하지말고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체계적 조직적으로 노력해왔는가를 깊이 반성해야 한다.

▼中-日-러-몽고 등과 연대를▼

이제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 정세는 다시 19세기 말로 회귀하는 듯하다. 100년 전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동아시아 구상을 세워야 하고 이를 추진할 세계전략을 짜야 한다. 그리하여 이웃나라의 미래세력과 양심세력을 적극 설득해 나가야 한다. 21세기를 우리 민족과 동아시아가 반드시 함께 승리하는 세기로 만들어야 한다.

박세일 서울대 교수·법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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