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은 버리고 가자]김용운/파벌주의 언제까지…

  • 입력 1999년 12월 3일 19시 15분


어느 나라 민족이건 정도의 차이는 있을 망정 모두가 국수적인 경향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오랜 쇄국으로 우물안 개구리 신세였던 한국인의 국수주의는 열등감과 피해의식으로 심각한 배타성을 지니게 되었던 것 같다. 입으로는 국제화 정보화의 시대라고 하면서 아직까지도 한국민의 의식 밑뿌리에 조선시대의 사고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선시대말 전국에 산재하는 자연부락은 약 8만곳으로 추산되는데 전국토를 통틀어 도시라고는 오직 서울뿐인,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구도이며 마을 사이의 양반 또는 세(勢) 자랑으로 에너지 낭비를 일삼았다.

조선시대의 수리는 대부분이 좁은 마을 단위였다. 거친 자연과 악랄한 관리의 수탈 앞에 백성들이 믿을 것은 마을밖에 없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남의 딸은 예쁜 게 밉고 내 딸은 얽은 것도 예쁘다’는 식으로 가까운 것에는 지나치게 관용을 베풀고 그에 반비례해 남에 대해서는 냉혹하게 배타적인 성격을 지닌다. 자기 편은 국세청을 통해 200억원을 먹어치우는 죄를 지었어도 감싸주고 남이 밍크코트 한장 해먹은 죄는 죽어도 물고 늘어진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식의 희극이 곳곳에서 연출되는 것이다.

◆‘우리 아니면 敵’고질병

제주 4·3사건, 거창학살, 광주항쟁과 같은 섬뜩한 학살의 뒷면에는 나와 같은 소속이 아니라면 언제나 적이 될 수 있다는 강한 배타성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인은 ‘우리’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우리끼리’의 우리는 먼저 남에 대해 ‘울’을 치는 것이다. 일단 ‘우리’ ‘우리’ 하고 몇번 외치면 그 범위는 점점 좁아져서 결국은 ‘나’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그것이 곧 조선시대의 당파간 논쟁이며 오늘날 여야 갈등의 원인이다.

배타적인 마을 의식은 곳곳마다 집단이기주의를 낳고 지역차별을 낳고 그것이 확대되면 편협한 국수주의로 이어진다. 같은 체험을 한 사람들끼리 만나 옛 이야기를 나누는 동창회나 향우회 자체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조직을 통해 집단이기주의가 발생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리하여 어떤 대학에는 동창 출신 교수가 90%를 넘는 곳이 생기는 것이다. 결국 우리끼리만 해먹자는 ‘거지의 텃세’가 판치고 직장마다 파벌이 생기고 학교에서는 왕따가 성행하게 된다.

◆집단利己 이잰 끝내자

한국 식민지화의 가장 큰 이유는 자기 가문, 그것도 가까운 가문에 대한 ‘울치기’인 세도정치 때문이었다. 같은 가문 출신이라도 소속 집단이 다르면 남을 대하는 것 이상으로 냉대하고 같은 한국인일지라도 침략자 이상으로 적대시했다. 독립운동이 좌절된 것도 출신성분 가문 지역별로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국자 김구 김좌진 등을 암살한 것은 모두 한국인이었다. 2차대전 이후 강대국에 의해 분단된 나라들은 한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통일됐다. 그러나 세계에서 민족적인 동질성을 가장 짙게 지닌 한국은 여전히 분단된 상태이다.

정보화는 세계화라는 원심력과 민족화라는 구심력을 동시에 발동해 가는 것이다. 이 흐름 속에 필연코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보편적 지성으로 뒷받침하는 성숙한 정신을 지녀야 한다. 좁은 ‘우리의식, 집단 이기주의’는 20세기에 버리고 가야 할 전 근대적 악의 유산인 것이다.

김용운(한양대 명예교수·수학문화연구소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