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김용훈/발로 뛰어 만든 ´히딩크 수기´ 돋보여

  • 입력 2002년 7월 12일 18시 35분


인터넷 콘텐츠 분야에 몸을 담은 이래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다. 종이, 웹, 모바일 등 비즈니스 영역을 넘나드는 동안 주 고객층의 연령대는 점점 낮아지고 있으며, 회사 동료 직원들의 나이도 그만큼 어려지고 있다. 386세대로서 이들의 힙합 리듬을 따라가기란 여간 숨찬 일이 아니다.

“영어 열라 열심히 해야져”라고 하는 이들에게 맞춤법과 문장 구성 등 국어 공부에 대한 잔소리를 늘어놓자면 한도 끝도 없다. 언어의 혼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는 신문의 올바른 글쓰기가 특효약이 될 것 같아 종종 정독을 권한다. 동아일보를 언급하자 “어려워여”가 이들의 첫마디였다. 무엇이 어렵다는 말일까. 동아일보가 생산하고 있는 상당수의 콘텐츠가 ‘∼해여’ 세대 고객들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2주간에도 유홍준, 송호근, 정옥자, 이시형, 남시욱 등등 각계 유명 인사들의 주옥같은 글들이 동아일보의 지면을 수려하게 장식했건만, 젊은 고객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홍명보와 이천수가 들려주는 생생한 월드컵 이야기(7월5일자 WEEKEND 5·6면), 서해 꽃게 고갈 원인을 짚어준 과학 기사(7월8일자 A21면), 영화 제목에 얽힌 톡톡 튀는 이야기(7월5일자 C6면) 등은 이들 세대와 호흡하기에 충분했다.

지면 위에는 기성세대의 혜안이 늘 필요하지만, 새로운 세대의 감각도 곁들여져야 한다. 젊은 필자 발굴과 현장감 있는 기자들의 자유롭고 과감한 글쓰기는 그래서 더욱 권장돼야 한다.

CEO 칼럼(7월6일자 A7면)의 경우 최근 들어 기업의 젊은 대표들이 부쩍 참여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그러나 최고경영자(CEO)들의 삶과 철학이 담긴 콘텐츠를 기대했던 고객들에게 특정 산업이나 해당 기업의 홍보성 콘텐츠가 입맛에 맞을 리 없다. 특정 정치인을 순수성과 결부시킨 근거 없는 찬사가 ‘골프와 인생’이라는 흥미로운 칼럼 제목을 망쳐놓은 예(7월3일자 D7면)도 있으니 말이다.

신문 고유의 공익성, 불편부당성, 객관성 등의 성격은 신문으로 하여금 콘텐츠의 생산뿐만 아니라 옥석 구분에도 게을리하지 말 것을 강요하고 있다. 날로 경박해지는 방송에 대한 경고(7월4일자 A31면, 7월12일자 C12면)는 그러기에 절묘했으며, 발로 뛰어 만든 히딩크 수기(7월2∼9일자)는 방송에서 여태껏 우려먹고 있는 지루한 영웅담과는 차원이 달라 좋았다.

또한 월드컵 이후 다시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자는 기획(7월5일자 A1·A2·A15면)은 개발시대적 발상이 다소 거슬리긴 했지만 분위기 전환에는 유효했다.

콘텐츠는 상품이다. 고객의 요구가 상품 기획에 반영될 뿐만 아니라 생산과정 전반에 녹아 들어가야 한다. 고객이 소프트한 것을 원하는데, 하드한 생산만 고집해서는 곤란하다. 고객, 즉 독자는 ‘짱’이다.

김용훈 아시아어뮤즈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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