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영섭]사진을 살리는 길, 망치는 길

  • 입력 2007년 10월 20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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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미술관에서 만난 한 장의 사진에 가슴이 뭉클했다. 1985년에 찍은 한 농부의 사진이었다. 그는 다 떨어진 낡은 옷에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오랜 농사일로 손이 굽어질 대로 굽어졌고, 하늘을 향해 웃고 있는 농부의 성실한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그 감동은 사실성에서 온 것이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사진 열풍에 휩싸여 있다. 1990년대 말 사진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디지털 사진이 출현하면서 사진 애호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우리나라 인구의 10분의 1인 약 500만 명이 사진 인구라고 한다. 이제 사진은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수단이 됐다. 카메라는 많은 사람이 나들이를 갈 때 제일 먼저 챙기는 필수 애용품이다. 사진 애호가들은 단순하게 좋은 사진을 보고 즐기는 차원에서 벗어나 직접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을 통해 삶과 사회를 이야기한다. 나름대로의 미학도 그려 낸다.

사진의 가장 큰 매력은 살아 숨 쉬는 순수한 리얼리티다. 사진을 보고 눈물을 흘릴 수 있고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살아 숨 쉬는 생명력 때문이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고 보존한다. 사진은 기억을 존재하게 만드는 도구이기도 하다. 누구나 어렸을 때 추억이 담긴 사진을 간직하고 산다. 카메라라는 도구를 통해 존재의 가치를 기억으로 남기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사진 열기에 힘입어 사진 전문 화랑이 속속 개관하고 기존 화랑도 사진전을 유치하는 등 사진은 이제 문화 예술의 중심 영역에 자리 잡았다.

세계 유수의 아트페어에는 사진이 전체 작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국내 사진 시장도 호황이다. 불과 2, 3년 전만 해도 500만 원 정도 하던 어느 작가의 사진이 지금은 2000만 원을 호가한다. 벤처기업 은행 건설회사 호텔 등 다양한 컬렉터가 생겨나면서 사진 소장 수요가 늘어난 덕분이다.

사진은 현대 건축물에 아주 잘 어울린다. 그래서 아파트 실내를 사진으로 장식해 내부 공간을 한층 더 품격 있게 만들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사진 작품은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간접 경험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런 변화는 사진이 오랜 시간 보존하며 향유하는 예술작품이 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요즘 국내 사진 컬렉터들을 보면 에디션(edition)에 집착하는 경우가 무척 많다. 사진의 에디션이란 동일한 사진의 전체 인화 부수를 말한다. 가령 사진에 1/20이라고 써 있으면 20장을 인화한 것 가운데 첫 번째로 나온 사진이라는 뜻이다.

사진의 최고 장점은 복제에 있다. 그런데 에디션을 정해 놓고 한정 판매한다면 사진의 장점인 복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물론 에디션이 있는 것이 꼭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에디션 유무가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에디션을 3개로 정하고 비싸게 판매할 수도 있고, 20개로 만들어 좀 더 저렴한 가격에 많은 사람에게 소장의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아예 에디션을 없애고 대량으로 만들어서 더 많은 컬렉터가 그 사진을 소장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면 인지도만큼 수요도 늘어 나중에 사진을 되팔기가 수월해진다.

진정한 사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 번쯤 고민하고 생각해 보자. 컬렉터들은 에디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고, 사진작가의 장래성이나 인지도, 작품성 등을 면밀히 살펴본 뒤 시장 원리에 맞는 적정 수준의 가격으로 사진을 구매해야 한다. 사진작가들도 서양 사진을 모방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한국의 문화에 맞는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김영섭 김영섭사진화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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